인동장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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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仁同張氏
영어의미역 Indong Jang Clan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경상북도 칠곡군 석적읍|기산면|가산면|북삼읍
시대 고려/고려 전기
집필자 박헌규
[정의]
장금용(張金用)과 장계를 시조로 하고 장금용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칠곡군의 세거성씨.

[연원]
고려 초 삼중대광신호위상장군(三重大匡神虎衛上將軍)을 지낸 장금용(張金用)을 시조(始祖)로 한다. 『여헌수록(旅軒手錄)』에 의하면, “상장군(上將軍) 금용(金用)을 인동장씨의 시조로 삼은 것은 단지(單只) 소급(遡及)해 올라가 아는 최상의 선조이므로 시조라 하는 것이며, 그 위의 조상은 누구인지 알 수 없다”라고 하였다. 후손들이 옥산(玉山)[인동의 별호]에 세거하면서 지명에 따라 본관(本貫)을 옥산으로 하다가 신라 경덕왕 때에 수동(壽同)이 인동(仁同)으로 개칭(改稱)됨에 따라 지금은 본관을 인동(仁同)으로 쓰고 있다. 또한 장계(張桂)를 시조로 하는 장계계(張桂系)의 인동장씨가 있는데, 고려 충열왕 삼십일년에 등과(登科)하여 예문관대제학(藝文館大提學)에 이르고 옥산군(玉山君)에 봉해졌다. 장계(張桂)는 태사공(太師公)의 후손이며 인동현의 남쪽 발영전(拔英田)에 터를 잡아 인동을 본관으로 정하였다.

[입향경위]
인동장씨의 시조인 삼중대광공(三重大匡公) 장금용이 고려 초 인동에 정착하여 이로부터 1천여 년 동안 내려오면서 현재 그 자손이 38대(代)까지 세계(世系)를 잇고 있다. 역사적으로 많은 명현석학(名賢碩學)과 충신열사(忠臣烈士)를 배출하였다. 1천여 년이나 인동에 세거하는 동안 숱한 전란(戰亂)을 겪으면서 종가(宗家)와 유지(遺址)를 보존해 오고 있다.

[현황]
인구주택총조사 「성씨 및 본관 보고서」에 의하면 2000년 1,210여 가구 3,600여 명이 칠곡군 관내에 살고 있다. 인동장씨의 계보(系譜)는 고려 초에 인동에 정착한 후 고려 중기에 분파(分派)되기 시작하여 조선 초기에 이르기까지 25개 파가 전국 각지로 분파하여 나갔다. 중리(中里)[종통], 남산(南山), 진가(眞佳), 진평(眞坪), 황상(凰顙) 등 5개 파(派)가 인동의 본바닥을 지켜 장씨의 연원을 이루었다. 1960년 기준으로 칠곡 및 선산 지역에 약 6만여 호가 살면서 영남의 대성(大姓)으로 번성하였다고 한다. 전국에 약 70만여 명이 흩어져 살고 있다.

[관련유적]
경상북도 구미시 인의동에 옥계서원(玉溪書院), 옥산사(玉山祠), 고려삼중대광신호위상장군옥산장공유허비 등이 있으며 칠곡군 관내에는 장맹저(張孟儲)의 추모지소인 삭제재, 장업(張岌)의 강학지소인 경양서당, 학거(鶴渠) 장순(張峋)의 강학지소인 학림정, 극명당(克明堂) 장내범(張乃範)의 추모지소인 반계정사, 기촌(岐村) 장용한(張龍翰)의 추모지소인 봉양재, 심곡(深谷) 장제원(張悌元)의 추모지소인 경심재, 검곡(儉谷) 장내도(張乃度)의 추모지소인 일원재, 만회당(晩悔堂) 장경우(張慶遇)의 강학지소인 화산서당, 만취당(晩翠堂) 장경달(張慶達)의 추모지소인 대송재, 만계(晩溪) 장경유의 추모지소인 만계정, 장보(張俌)의 묘재(墓齋)인 진목재, 장신손(張信孫)의 추모지소인 술효당, 장우일이 제시(題詩)하던 귀로정(歸老亭), 장원(張原)의 추모지소인 계산재, 장우원(張宇遠)의 추모지소인 심신재, 침류정(枕流亭) 장우상의 추모지소인 침류정, 장복추의 강학지소인 녹리서당, 장규석의 추모지소인 하산재, 장승택의 강학지소인 뇌양정사, 회당(晦堂) 장석영의 강학지소인 녹동서당, 장일환(張日煥)의 추모지소인 기주재, 화강(華岡) 장상학의 강학지소인 공실서당, 아헌(我軒) 장선원이 학문에 진력했던 아헌정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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