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 근대 건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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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江景近代建築物
영어의미역 Ganggyeong Modern Buildings
분야 문화·교육/문화·예술,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시대 근대/근대
집필자 김은지
[정의]
충청남도 강경 지역에서 개항 이후에 건립된 건축물.

[개설]
1910년 한일합방이 되어 우리 땅이 일제의 손아귀에 들어가자 일제는 건축 식민화를 본격화하였다. 1916년에는 경성고등공업학교를 설립하여 우리 건축가를 일부 양성하기도 하였다. 1920년대에는 모더니즘 양식, 곧 근대주의 건물이 개별적인 형태로 세워지기 시작했으나 일제 밑에서 교육을 받은 우리 건축가들은 그들의 식민화 건축 활동의 도구로 존재했다. 1930년대 초에 이르러 우리 건축가에 의해 설계된 건축물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금강은 과거 교통수단이 발달하지 않았던 때에는 서해안의 간조·만조를 이용한 내륙의 수로로서 매우 중요한 포구 역할을 하였다. 강경은 포구가 있었다는 지리적인 환경 탓에 자연스럽게 상업도시로 번성할 수 있었으므로 근대 건축물이 일찍 건립되었다. 강경의 근대 건축물은 190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금강의 지류인 강경천의 호안공사가 완료되면서 세워지기 시작했다.

[근대 건축의 형성]
시가지에는 상업도시 구조에 적합한 각종 상점, 금융건물, 그리고 점포병용 주택들이 세워졌는데, 일본인들에 의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특히 강경천을 중심으로 한 서창동, 중앙동, 염창동, 홍교동 등지에 주거용 건축물, 관청 및 공공건축물, 금융 및 상업건축물, 학교건축물 등 다수의 근대 건축물들이 새롭게 건축되었다.

1. 사회간접시설과 문화시설

강경은 일본 상인들의 침투가 심했는데, 이러한 인구의 집결은 상대적으로 사회간접시설 및 문화시설의 보급을 촉진시켰다. 그에 따라 1920년대를 전후로 도내에서 처음으로 전기가 들어오게 되는데, 강경읍만을 위한 전기 공급을 위해 화력발전소가 대흥리에 약 1백 평 규모로 세워졌다. 또한 상하수도의 공사와 호남 지방 최초의 극장인 강경극장도 이즈음 건축되었다.

2. 관공서와 은행 및 교육시설

중요 관공서와 은행 등도 일찍부터 강경에 자리하게 된다. 1902년 5월 우체국 고유번호가 충남 1번인 강경우편수취소를 시작으로 지방법원 지원, 강경면사무소, 강경전기주식회사, 전주전매지국 대전출장소 강경영업소, 경찰서 등이 건축되었다. 관공서의 직급도 강경지점 군산출장소, 강경지점 대전출장소 등의 상급기관이 강경에 유치되기도 하였다. 강경의 상업 발달은 우리나라 5대 명문 상고 중의 하나인 강경상업고등학교를 비롯한 교육시설을 확충하는 계기가 되었다.

3. 주거 시설

근대시기 강경 지방의 주거지는 황산리의 전통 한옥군과 중앙리 주변의 일본인 및 청국인 주택군들로 뚜렷하게 구분되면서 형성되었다. 1911년 철도가 부설되면서 일본인들은 한옥군으로 형성된 기존의 채운리·산양리 쪽으로 침점하면서 일본식 가옥을 세워 나갔다. 현재 서창리·중앙리 일대에 다수의 주택들이 남아 있는데, 이중 점포 병용인 상관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들은 당시 공관, 여관 및 주거 기능이 부가된 가내공장들로 사용되었다.

이외에도 잡화점, 미곡상, 자재상, 석유, 약국 및 양품점 등과 같은 일상생활과 관련된 소규모 점포들이 다수 분포되어 있었다. 여관은 1904년 1월 일본인이 최초로 개관한 목조 2층 규모의 금강여관 외에 하시타여관 등이 영업을 하였다. 의료기관의 경우, 1904년 5월 일본인 의사의 개업을 시작으로 현존하고 있는 삼성병원, 호남병원을 비롯하여 다수의 약방 및 약국이 성업하였다.

[근대 건축물의 분포]
강경 근대 건축물의 위치를 살펴보기 위해 분석 대상으로 삼은 지도는 총 4장이다. 1911년 사카가미 도투라의 『최근강경사정』에 수록된 도면, 1916년 조선총독부에서 제작한 축적 1:10,000의 강경읍 지형도, 1928년에 발간된 사카가미 도쿠라의 『강경사정』에 수록된 1927년 강경시가도, 1930년대 작성된 스케일이 없는 강경시가지 도면 등을 활용하였다. 이외에도 현재의 위치를 확인하고자 1999년 국립지리원에서 제작한 축적 1:5,000의 지형도를 참고하였다.

1. 1911년 지도

이 지도에 의하면 범례에는 상시장·하시장을 포함하여 18개의 건물이 기재되어 있고, 이를 각각 일본어로 번호를 매겨 위치를 확인할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대흥천 지류가 당시 읍 내부로 흘렀던 것을 확인할 수 있으며, 일제강점기 옥녀봉에 신사가 있었던 것이 눈에 띈다.

지도상 주요 건축물의 분포가 주로 대흥천의 우측부, 즉 상시장을 중심으로 분포하고 있어 당시 번화했던 지역이 이 부근이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또한 한성공동창고회사 강경출장소, 동양척식주식회사 강경지점, 강경지방금융조합, 신탁회사 등 금융 관련 시설들이 다수 들어서 있어 당시 무역 거래가 활발하였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다.

2. 1916년 제작 지형도

이 지형도에도 역시 주요 건축물의 위치가 기재되어 있는데 1911년 지도와 비교해 볼 때, 한일은행 강경지점이 건축된 것이 가장 큰 차이점으로 꼽을 수 있다. 따라서 1911년과 1916년 사이에 한일은행 강경지점이 현재의 위치에 건축된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으며, 강경역이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1911년 지도 제작 이후 강경역이 신설된 것을 알 수 있다.

3. 1927년 강경시가도

1928년 발간한 『강경사정』에 수록된 강경시가도의 원전에는 범례와 번호로 표기되어 있는데 지도상 주요 건축물의 변화는 확인되지 않는다.

4. 강경시가지 도면

1930년대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강경시가지 도면(강경읍내 현황도)은 1991년 논산시에서 발간한 『내 고장 으뜸가꾸기 마을이야기 모음』제2집 강경편에 강경읍 최초 지도로 표기되어 있다. 또한 구 한일은행 강경지점동일은행으로 명기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강경읍이 면에서 읍으로 승격되는 시점이자 구 한일은행 강경지점동일은행 강경지점으로 변경되는 시점인 1932년경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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