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서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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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利川徐氏
영어의미역 Icheon Seo Clan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경기도 부천시 송내동
집필자 김원준

    [상세정보]

    세거지 경기도 부천시 송내동
    입향시기/연도 1600년대
    성씨시조 서신일
    입향시조 서계
[정의]
서신일 을 시조로 하고 서계를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부천시의 세거 성씨.

[개설]
서신일(徐神逸)을 시조로 하는 이천서씨는 서씨의 대종으로, 현존하는 20여 개 서씨는 모두 이천서씨에서 파생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므로 서신일이천서씨의 시조이자 모든 서씨의 도시조가 된다. 서신일은 신라 효공왕[897~912] 때 아간대부를 지내다가 국운이 다함을 개탄하여 이천에 은거하였고, 이후 후손들이 이천을 본관으로 삼았다.

전설에 의하면 서신일은 기자조선을 세운 기자의 후손으로 본명이 기만주였다. 산에서 나무를 하던 중에 문성왕의 눈에 들어 서씨를 하사받고 이름을 서신일로 바꾸었다. 나이 80세에 아들 서필(徐弼)을 낳았는데 이때부터 서씨가 번창하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이천서씨족보(利川徐氏族譜)』에 의하면 서신일의 아들 서필은 고려 광종(光宗) 때의 명신으로 대광내의령(大匡內議令)을 지냈고, 명필로 이름 높았다. 서필의 아들 서희(徐熙) 역시 뛰어난 외교관이자 정략가(政略家)로 이름 높았다. 조선시대에는 33세손 서채량(徐采亮)이 정조 때 사헌부 감찰(司憲府監察)을 지냈으며, 35세손 서병순(徐秉淳)은 강원도 관찰사를 지냈다.

[입향경위]
27세손 서계가 1600년대 황해도 연백에서 경기도 부천으로 이주하면서 세거하게 되었다.

[현황]
경제기획원 자료에 의하면 1985년 11월 현재 부천에 거주하는 6개 서씨 중 이천서씨는 2위이고, 441가구 793명이 조사되고 있다. 현재 이천서씨 절효공파가 송내동을 중심으로 부천시 전역에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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