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제국 칙령 제4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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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大韓帝國勅令第-號
영어의미역 The Korean Empire Ordinance 41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
지역 경상북도 울릉군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이병훈

    [상세정보]

    제정연도/일시 1900년(광무 4) 10월 25일연표보기
    시행연도/일시 1900년(광무 4) 10월 27일연표보기
    시행처 의정부(議政府)
[정의]
1900년 울릉도를 울도군으로, 울릉도 도감을 울도군 군수(郡守)로 격상한 관제 개정.

[개설]
1900년(고종 37) 10월 25일 반포된 칙령으로 이에 의거하여 울릉도는 독립된 군(郡)으로 격상되어 울릉도·죽도·독도를 관장하는 지방행정기관이 되었다. 이와 더불어 울릉도 도감(島監)은 울릉군 군수(郡守)로 격상되었으며, 울도군 초대 군수로는 배계주(裵季周)가 임명되었다.

[제정경위 및 목적]
1899년 울릉도의 산림 채벌권을 가진 러시아가 대한제국 정부에 일본인들이 불법으로 울릉도의 삼림을 벌채해 가고 있으니 이를 금지해 달라고 외교 문서로 강력하게 항의해왔다. 이에 대한제국 정부는 이를 금지함과 동시에 울릉도 이주민에 대한 행정 관리를 위해 1899년 5월 배계주를 울릉도 도감(島監)으로 재임명하여 파견했다.

또한 러시아측과 일본측의 의구심을 해소하기 위해 배계주와 함께 부산항 세무사로 근무하고 있던 외국인 세무사를 동행시켜 일본인의 울릉도 침입 실태를 조사 및 보고하도록 하였다. 그 보고서에 의하면 1899년 5~6월 당시 울릉도에는 수백 명의 일본인들이 집단적으로 불법 침투하여 촌락을 형성하고 있었으며, 울릉도의 삼림을 지속적으로 벌채하여 선박을 통해 일본으로 운반해가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곡식을 비롯한 각종 재화의 밀무역도 폭력적으로 자행하고 있었다.

울릉도 도감 배계주는 이와 같은 사실의 보고와 함께 울릉도 주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이들 일본인들에 대한 중앙 정부 차원의 강력하고 적극적인 조치를 요청하였다. 이러한 실태를 보고받은 대한제국 정부는 주한 일본 공사를 불러 울릉도에 불법 밀입도한 일본인들의 본국 귀환은 물론, 밀무역을 자행한 죄과를 ‘조일수호조규’[1876] 약정에 의거 조사·징벌하여 그 폐단을 영구히 근절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이러한 요구에 대해 일본 공사는 이 경우 한국 관헌이 체포하여 가까운 일본 영사에게 넘기도록 되어 있다는 ‘조일수호조규’의 규정을 내세워 책임을 회피하였다. 이에 대한제국 정부는 근본 대책 수립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1899년 12월 내무관리 우용정(禹用鼎)을 울릉도 시찰위원으로 임명하여 일본 측과 제3국 외국인을 포함한 조사단을 파견하여 일본인의 불법 자행의 실태를 재조사하기로 결정하였다.

이렇게 해서 1900년 우용정(禹用鼎)을 그 대표격인 시찰위원으로 하고 감리서(監理署) 주사 김면수(金冕秀), 부산 해관 세무사 라포트(E. Raporte) 및 봉변(封辨) 김성원(金聲遠), 그리고 부산에 주재하고 있던 일본 부영사관보 아카쓰카 쇼스케[赤塚正助] 및 경부(警部) 1명으로 구성된 조사단이 5월 31일 울릉도에 도착하여 6월 1일부터 5일간 세무사 라포트의 입회 아래 그 실태를 조사하였다.

조사 이후 대한제국은 울릉도·독도에 대한 행정 관리를 강화하기 위한 방안 수립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이 지역에 대한 관제의 개정 및 격상을 단행하였다. 즉 대한제국은 1900년 10월 25일 「대한제국 칙령 제41호」를 통해 울릉도를 울도군으로, 그리고 기존의 울릉도 도감을 울도군 군수로 격상시키는 관제 개정을 단행하여 공표하였던 것이다. 이와 동시에 독도 역시 울도군 군수의 관할 하에 두었다.

[내용]
○ 울릉도(鬱陵島)를 울도(鬱島)로 개칭(改稱)고 도감(島監)을 군수(郡守)로 개정(改正) 건(件)

제1조: 울릉도(鬱陵島)를 울도(鬱島)로 개칭야 강원도(江原道)에 부속하고 도감(島監)을 군수(郡守)로 개정야 관제중(官制中)에 편입(編入)고 군등(郡等)은 오등(五等)으로  사(事).

제2조: 군청(郡廳) 위치(位置) 태하동(台霞洞)으로 정(定)고 구역(區域)은 울릉전도(鬱陵全島)와 죽도(竹島) 석도(石島)를 관할(管轄) 사(事).

제3조: 개국오백사년(開國五百四年) 팔월십육일(八月十六日) 관보중(官報中) 관청사항난내(官廳事項欄內) 울릉도 이하(鬱陵島 以下) 십구자(十九字)를 산거(刪去)고 개국오백오년(開國五百五年) 칙령(勅令) 제삼십육호(第三十六號) 제오조(第五條) 강원도이십육군(江原道二十六郡)의 육자(六字) 칠자(七字)로 개정(改正)고 안협군하(安峽郡下)에 울도군(鬱島郡) 삼자(三字)를 첨입(添入) 사(事).

제4조: 경비 오등군(五等郡)으로 마련(磨鍊)호되 현금간(現今間)인즉 이액(吏額)이 미비(未備)고 서사초창(庶事草創)기로 해도수세중(海島收稅中)으로 고선(姑先) 마련(磨鍊) 사(事).

제5조: 미비(未備) 제조(諸條) 본도개척(本島開拓)을 수(隨)야 차제(次第) 마련(磨鍊) 사(事).

제6조: 본령(本令)은 반포일(頒布日)로부터 시행(施行) 사(事).

광무(光武) 4년(四年) 10월 25일(十月二十五日)

어압(御押) 어새(御璽) 봉(奉)

칙(勅) 의정부의정임시서리찬정내부대신(議政府議政臨時署理贊政內部大臣) 이건하(李乾夏)

[의의와 평가]
대한제국 칙령 제41호에 의해 울릉도는 울도군으로 승격되어 강원도 독립 군현 27개 중의 하나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와 더불어 울릉도의 초대 군수로는 도감으로 있던 배계주가 주임관(奏任官) 6등으로 임명되었고, 뒤이어 사무관으로 최성린(崔聖麟)이 임명, 파송되었다. 그러나 이 칙령에서 특히 주목할 만한 내용은 울도군 군수의 관할 지역에 석도(石島), 즉 현재의 독도가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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