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위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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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長興魏氏
영어의미역 Jangheung Wi Clan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전라남도 여수시 율촌면 산수리 봉두마을
집필자 김준옥
[정의]
위경을 시조로 하고 위효징과 위용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여수시 세거 성씨.

[연원]
신라 27대 선덕여왕 때 당 태종이 보낸 8학사(八學士) 중 위(魏) 땅에 거주했던 위경(魏鏡)은 신라 조정으로부터 아찬(阿飡) 벼슬까지 부여되고 지금의 장흥인 회주(懷州)에서 문화사절(文化使節)의 임무를 수행하는데, 그로 인해 고려 충선왕 때 위경을 회주군(懷州君)으로 봉하니 장흥위씨의 시조가 된다. 이후 고려 초에 대각관(大覺官) 위창주(魏菖珠)를 중조로 15세손 위덕룡(魏悳龍) 이래 능주파(綾州派)·관산파(冠山派)·행원파(杏園派)·여천파(麗川派)로 분파하게 된다. 여수의 장흥위씨는 행원파에 속한다.

[입향경위]
여수시 율촌면 산수리 봉두마을은 원래 새가 많이 날아들어 조촌(鳥村)이라 불리다가 마을 뒤 앵무산 봉우리가 마치 새머리 모양과 같다 하여 봉두(鳳頭)라 칭하였다고 한다. 이 마을에 장흥위씨 입향조 위효징(魏孝徵)이 터를 잡아 현재의 종손까지 누대로 살아온 ‘봉황포란지혈(鳳凰抱卵之血)’이라는 명당에 관한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임진왜란 중 상주영장(尙州營將) 위대경(魏大經)이순신 막하에서 순절하자 위대경의 부인인 전주최씨(全州崔氏)가 아들 위효징과 함께 고향 장흥으로 돌아가는 길에 우연히 마을 옆을 지나가는데 오동나무에 둥지를 틀어 알을 품고 있는 봉황을 발견하고 그곳에 집을 지어 살면서부터 장흥위씨가 번성했다는 것이다.

원래 이 마을은 1582년경 광산김씨(光山金氏) 김명운(金命韻)이 충청남도 연산에서 이곳으로 입향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하는데, 봉두마을산수리중종 때 사화를 피해 17세손 위종로(魏宗魯)의 아들인 위용이 먼저 입향한 것으로 보아 위효징의 어머니 최씨는 친척인 이들을 찾아온 것으로 보인다. 위효징은 율촌면 산수리 봉두마을 광산김씨 입향조 김명운의 딸과 혼인하여 봉두마을에 정착했다. 봉두마을 위씨들은 17세손 위종복(魏宗復)의 차남인 위유정(魏由貞)의 후손이 된다.

[현황]
장흥위씨 후손들은 현재까지 여수시 율촌면 산수리 봉두마을에 집성촌을 이루며 살고 있으며, 율촌면 산수리 행정마을·신대마을·평여마을에도 많은 세대가 살고 있다. 봉두마을은 2/3가 장흥위씨들인데, 이러한 명당에 종가댁이 들어선 연유로 현재까지 종손이 단절되지 않고 자손들이 번성하고 있다고 후손들은 믿고 있다.

[관련유적]
1928년 영장공(營將公) 위대경 등을 배향하기 위해 경모재(敬慕齋)가 건립되었으나 1939년 소실되었다가, 율촌면 산수리 봉두마을에 다시 복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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