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봉리 서낭당

대표시청각
  • URL Copy
  • twitter
  • facebook
한자 栢峰里-
영어음역 Baekbong-ri Seonangdang
영어의미역 Village Guardian Shrine in Baekbong-ri
이칭/별칭 광고개 서낭당,훈고개(큰고개) 서낭당,숯돌고개 서낭당
분야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민간 신앙 유적
지역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백봉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이숙
[정의]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백봉리에 있는 서낭당.

[개설]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백봉리에는 백봉2리의 벌말(평촌)과 백동마을(잣나무골), 백봉6리의 사은마을(샛말), 백봉8리의 봉리마을 등에 서낭당이 있었다. 벌말의 서낭당은 광고개 서낭당으로 불리고, 백동마을의 서낭당은 훈고개(큰고개) 서낭당, 사은마을의 서낭당은 숯돌고개 서낭당이라고 불렀다. 이들 서낭당은 현재 대부분 사라지고 사은마을 서낭당만이 남아 있다.

백봉리에 있던 서낭당들은 제당이긴 하지만 동제의 대상은 아니고, 행로의 안전이나 집안의 평안을 비는 개인 신앙처로서의 의미와 함께 마을과 마을 간의 이정표 구실을 하는 곳으로서 의미가 컸다.

[위치]
벌말 서낭당은 죽산으로 이어지는 광고개에 있었고, 백동마을 서낭당은 마을 입구 훈고개(큰고개)에 자리잡고 있었다. 또한 봉리마을 서낭당은 봉리에서 샘말로 들어서는 길목에 있었으며, 사은마을 서낭당은 진촌으로 가는 숯돌고개에 있다. 서낭당이 있는 고갯마루나 마을 입구의 길은 모두 달구지만이 겨우 다닐 수 있을 정도의 소로였다.

[형태]
백봉리 서낭당은 신목과 돌무더기로 이루어졌는데, 신목은 모두 참나무이며, 그 아래에 돌무더기가 쌓여 있었다. 사은마을 서낭당의 경우 예전의 참나무 고목은 죽고 현재의 나무는 새로 싹이 나서 자란 것으로, 마을 사람들은 참나무 주변의 아카시나무와 함께 이곳을 성역으로 여긴다. 과거에는 서낭나무 밑에 돌무더기가 있었으나 현재는 신목만이 남아 있다.

[의례]
서낭당을 지날 때는 돌멩이를 한 개 내지 세 개를 던지고 가거나 돌멩이를 던진 후 침을 세 번 뱉고 가기도 하였다. 백동마을의 경우, 신부가 가마를 타고 시집갈 때는 반드시 서낭당에 북어와 청색·홍색 천을 매달아 놓고 갔는데, 이렇게 폐백을 드리는 것은 서낭당에 있는 ‘서낭수비’라는 잡귀·잡신이 신부를 따라오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백동마을과 사은마을의 일부 가정에서는 정기적인 의례로서 정월 보름경(14일) 백설기를 한 시루 쪄서 서낭당 앞에 놓고 고사를 지냈다. 치성을 드린 떡은 당시 먹을 것이 넉넉하지 못하던 시절이라 배가 고픈 사람들이 가져다 먹었는데, 이 떡을 먹으면 재수가 좋다는 속설이 있어서 많이들 가져다 먹었다.

또한 사은마을의 경우 가을 농사를 다 지은 뒤 좋은 날을 받아 떡시루를 해놓고 개인 치성을 드리기도 하였다.

[현황]
사은마을을 제외한 백봉리의 서낭당들은 도로를 새로 내거나 확장하면서 모두 사라지고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다. 사은마을의 경우 서낭나무는 있으나 현재 치성을 드리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서낭에 대한 금기는 아직도 지켜지고 있어서, 서낭나무에 함부로 손을 대면 화를 입는다든가, 혼례나 상례 때는 서낭당 앞으로 지나가지 않고 다른 길로 지나간다. 봉리마을의 경우도 서낭당이 있던 곳에 큰 길이 났지만, 예나 지금이나 이 길로는 상여가 지날 수 없기 때문에 초상이 나면 상여를 메고 마을 아래쪽으로 난 길로 다닌다.

    [참고문헌]

    • 『용인시사』2(용인시사편찬위원회, 2006)
    • 인터뷰(백봉6리 사은부락 주민 박재슬, 여, 88세, 2007.6.16.)
    • 인터뷰(백봉6리 사은부락 주민 주수남, 여, 87세, 2007.6.16.)
1
작성자 확인번호  
의견내용
등록

향토문화전자대전 로고 집필항목 검색 닫기
향토문화전자대전 로고 참고문헌 검색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