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성송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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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冶城宋氏
영어음역 Yaseong Songssi
영어의미역 Yaseong Song Clan
이칭/별칭 야로송씨,합천송씨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송문리
집필자 정양화
[정의]
송맹영을 시조로 하고 송성립을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용인시 세거 성씨.

[연원]
야성(冶城)은 경상남도 합천군 야로(冶爐)의 별칭이다. 야성송씨의 시조 송맹영(宋孟英)은 고려 목종 때 사람으로 간의대부와 총부의랑을 역임했으며 야성군(冶城君)에 봉해졌다. 그리하여 후손들은 그를 시조로 받들고 야성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 시조 송맹영의 아들 송창(宋昌)은 고려조에서 신호위대장군을 지냈고, 손자 송우(宋瑀)는 문림랑(文林郞)으로 소부소감(小府少監)을 역임하여 상서호부에 오른 아들 송인서와 함께 가세를 일으켰다.

송구(宋構)는 경기감사를 비롯한 주요 관직을 역임하고 어사가 되어 영남 지방의 시정을 안무했으며, 송구의 아들 송길창(宋吉昌)은 개성윤(開城尹)을 지내고 야성군(冶城君)에 봉해져 크게 명성을 떨쳤다. 1519년(중종 14) 별시 문과에 급제했던 송희규(宋希奎)는 왕의 외숙으로 전횡을 일삼던 윤원형(尹元衡)의 비행을 탄핵하다가 귀양살이를 했다. 일제 시대에 애국지사들의 행적과 사료를 모아 『기려수필(騎驢隨筆)』을 남긴 송상도(宋相燾) 등이 유명하다.

[입향경위]
시조 송맹영의 10세손인 송희미(宋希美)가 합천에서 경기도 장단으로 이거하였고 둘째아들인 송성립(宋成立)이 장단에서 지금의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송문리로 이거하여 후손들이 세거하게 되었다.

[현황]
1960년대에는 마을의 90% 이상이 야성송씨 집성촌을 이루고 있었으며 현재도 15여 호 이상이 거주하고 있다.

[관련유적]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송문리 송동에 입향조 송성립의 묘역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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