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을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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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坤乙洞
영어음역 Goneul-dong
이칭/별칭 곤흘동
분야 역사/근현대,지리/인문 지리
유형 유적/유적(일반),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화북1동 4410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장윤식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화북1동에 있는 제주 4·3 당시 초토화되어 터만 남아 있는 마을.

[개설]
곤을동화북천이 바다를 향해 흐르다 별도봉 동쪽에서 두 갈래로 나뉘는 곳에 하천 안쪽에 있던 안곤을, 하천과 하천 사이에 있던 가운데곤을, 그리고 밧곤을 등으로 이루어진 마을이었다.

밧곤을과 가운데곤을 주민들은 ‘덕수물’ 이란 용천수를, 안곤을 주민들은 ‘안드렁물’이란 용천수를 식수로 사용하였으며, 작지만 마을 공회당도 있었고 안곤을과 가운데곤을에는 말방앗간도 있던 전형적인 자연마을이었다.

제주 해안 마을의 주요 생활 형태인 반농반어로 생계를 꾸리던 이곳 주민들은 1949년 1월 4일 불시에 들이닥친 토벌대에 의해 가옥이 전소되고 많은 주민들이 희생당하는 비극을 겪었다.

[위치]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화북1동 오현고등학교로 가다보면 소나무가 서 있는 비석거리가 있는데, 그곳에서 왼쪽 길로 100m 정도 내려가면 별도봉 쪽 해안에 위치한다.

[형태]
곤을동에는 폐허가 된 터에 양옥집 한 채만이 덩그러니 서 있으며, 입구에는 제주4·3사건진상규명 및 희생자명예회복실무위원회에서 세운 ‘잃어버린 마을’ 표석이 세워져 있다. 이는 제주도에서 벌인 사업의 일환으로 원래 2002년 표석을 세우고자 하였다.

2002년 당시 표석에는 초토화 작전이 군인에 의해 벌어진 사건임을 명기하지 않았는데, 이에 곤을동 출신 주민들의 반발로 표석을 세우지 못하였다. 결국 군인에 의해 곤을동이 초토화되었다는 문구를 삽입한 후, 2003년 4월 3일 표석을 세우게 되었으며 표석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새겨져 있다.

잃어버린 마을 -곤을동-

항상 물이 고여 있는 땅이라는 데서 그 이름이 붙여진 이곳 제주시 화북동 곤을마을은 화북천 지류를 중심으로 밧곤을, 가운데곤을, 안곤을로 나뉘어진다. 곤을마을은 고려 충렬왕 26년(서기 1300년)에 별도현에 속한 기록이 있듯이 설촌된 지 7백년이 넘는 매우 유서 깊은 마을이다.

주민들은 농사를 주로 했으며, 바다를 끼고 있어 어업도 겸하면서 43호가 소박하고 평화롭게 살았다. 그러나 4·3사건의 와중인 1949년 1월 4일 아침 9시경 군 작전으로 선량한 양민들이 희생되고 온 마을이 전소되는 불행을 겪었다. 이 어찌 슬프고 억울한 일이 아니겠는가.

그 당시 모든 가구가 전소되었고 24명이 희생되었다. 초가집 굴묵 연기와 멜 후리는 소리는 간데없고 억울한 망자의 원혼만 구천을 떠도는구나! 별도봉을 휘감아 도는 바닷바람 소리가 죽은 자에게는 안식을, 산 자에게는 평화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고 있다.

4·3사건으로 하여 이 고장을 지키다 가신 님들의 명복을 두 손 모아 빌면서 다시는 이 땅에 4·3사건과 같은 비극이 재발하지 않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이 표석을 세운다.

2003년 4월 3일

제주4·3사건진상규명 및 희생자명예회복실무위원회 위원장

제주도지사

[현황]
곤을동에는 제주 4·3의 비극으로 생긴 많은 ‘잃어버린 마을’ 중에서도 집 터와 담장 등이 비교적 뚜렷이 남아 있는 지역이다. 안곤을 터에는 방앗돌이 남아 있었으나 최근 곤을동 출신 주민들에 의해 옮겨졌다고 한다.

[의의와 평가]
곤을동은 해안 마을로 1949년 1월 4일 군인들에 의해 초토화를 겪고 결국은 잃어버린 마을이 된 제주 4·3의 상징적인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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