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801002 |
---|---|
한자 | 全昌寔 |
이칭/별칭 | 자순(自純),국사(菊史)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전라북도 진안군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김병남 |
활동 시기/일시 | 1886년 - 전창식 의병 창의 |
---|---|
묘소 | 전창식 묘소 -
전라북도 진안군 백운면 운교리
![]() |
성격 | 의병 |
성별 | 남 |
본관 | 천안(天安) |
대표 경력 | 의병장 |
개항기 진안 출신의 의병.
본관은 천안(天安). 자는 자순(自純), 호는 국사(菊史). 대호군을 지낸 전극례(全克禮)의 후손으로 증 숭정대부(崇政大夫) 전응호(全膺鎬)의 아들이다. 장인은 공주(公州) 이주경(李周璟)이다.
전창식(全昌寔)[?~?]은 일찍이 금곡(錦谷) 송내희(宋來熙)의 문하에서 글의 배워 학식이 매우 높았다. 병인양요(丙寅洋擾)가 일어나자 전창식은 의병을 일으켜 포수(砲手) 100명을 모집하는 등 군대를 정비하였다. 음력 11월 7일에 정족산성을 공략하던 프랑스군을 매복 중이던 천총 양헌수가 이끄는 포수 500명이 물리침으로써 프랑스 군이 음력 11월 18일 퇴각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의병진을 해산하였다.
묘는 진안군 백운면 운교리(雲橋里) 앞산에 있다.
홍문관 대제학으로 증직되었는데, 『오륜록(五倫錄)』에 실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