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30086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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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海一 |
영어음역 | Gim Haeil |
이칭/별칭 | 종백(宗伯),단곡(檀谷)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충청북도 제천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인호 |
출생 시기/일시 | 1640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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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660년![]() |
활동 시기/일시 | 1663년![]() |
활동 시기/일시 | 1673년![]() |
활동 시기/일시 | 1678년![]() |
활동 시기/일시 | 1689년![]() |
몰년 시기/일시 | 1691년![]() |
묘소|단소 | 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 연박리 |
성격 | 문신 |
성별 | 남 |
본관 | 예안(禮安) |
대표 관직 | 경주 부윤 |
조선 후기 제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예안(禮安). 자는 종백(宗伯), 호는 단곡(檀谷). 증조할아버지는 김윤안(金胤安)이며, 할아버지는 김득선(金得善)이고, 아버지는 김단(金鍴)이다. 어머니는 권극해(權克諧)의 딸 안동 권씨(安東權氏)이다. 부인은 이은진(李殷鎭)의 딸 여주 이씨(驪州李氏)이다.
김해일(金海一)[1640~1691]은 1660년(현종 1) 사마시에 입격(入格)한 뒤 1663년(현종 4) 선교랑(宣敎郎)의 신분으로 문과에 급제하였다. 그 뒤 사헌부 지평·사간원 정언·사헌부 헌납·사헌부 집의 등을 두루 역임하고, 1673년(현종 14) 남원 부사로 나갔다. 1678년(숙종 4) 사헌부 집의로 재직 중에 사은사(謝恩使) 서장관으로 연경에 다녀온 뒤 승정원 좌승지에 올랐다.
1689년(숙종 15) 진위겸진향사(陳慰兼進香使)의 부사(副使)로서 청나라에 다녀와 여주 목사를 거쳐 경주부 윤에 임명되었다. 경주에서 굶주린 백성을 구제하는 데 힘써 백성들이 송덕비를 세웠다. 경주부 윤으로 재직하던 중 병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묘소는 제천시 봉양읍 연박리에 있다.
문집으로 『단계선생문집(檀溪先生文集)』이 있다. 문집의 상소문에는 남인으로서 서인 정치인의 파직을 요구하는 소(疏)가 다수 수록되어 있다. 서장관과 부사로 연경을 다녀온 기록인 「연행일기(燕行日記)」와 「연행일기속(燕行日記續)」은 당시 조선과 청의 관계를 알 수 있는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