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3007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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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延安李氏 |
영어음역 | Yeonan Issi |
영어의미역 | Jeonju Yi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충청북도 제천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인호 |
입향 시기/일시 | 1842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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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거|집성지 |
충청북도 제천시 한수면 북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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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씨 시조 | 이무(李茂) |
입향 시조 | 이겸우(李謙愚) |
이무를 시조로 하고 이겸우를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제천시의 세거 성씨.
연안 이씨의 시조는 당나라 장군 이무(李茂)이다. 그는 당 고종 때 중랑장(中郞將)을 지내다가 660년 나·당 연합군 소정방(蘇定方)의 부장으로 신라에 왔다. 백제를 평정(平定)하는 데 공을 세워 연안후(延安侯)에 봉해졌고, 그 후 신라에 귀화하여 살게 되었다. 그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받들고, 식읍(食邑)으로 하사받은 연안(延安) 땅을 본관(本貫)으로 삼게 되었다. 조선조 연안 이씨는 총 250여 명의 문과 급제자를 배출한 명문이 되었다. 이석형(李石亨)은 조선 초에 연안 이씨의 번성을 가져온 중흥조이며, 그의 현손이 한문학의 대가인 월사(月沙) 이정구(李廷龜)이다.
명암(鳴巖) 이해조(李海朝)[1660~1711]는 청풍 북노리[현 제천시 한수면 북노리]의 연안 이씨 명암파(鳴巖派)의 파조이다. 연안 이씨는 본래 서울에 세거하던 집안이었으나, 순조(純祖) 연간 이겸우(李謙愚) 대에 충주 살미면 공이곡을 거쳐 1842년 청풍 노촌리에 자리를 잡았다.
연안 이씨는 6·25 전쟁을 거치면서 대부분 지역에서 이향하였다. 최근에는 본관 성씨별 자료를 수집하지 않아 자세한 세대수는 알 수 없으며, 2000년 자료에 따르면 제천시에는 연안 이씨가 91가구 298명이 있었다.
연안 이씨 종손인 이구영(李九榮)[1920~2006]이 소장하고 있던 고문서는 약 4,500여 점, 성책 고문서는 84점이었다. 이들 문서류는 일괄적으로 한국정신문화연구원[현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수집하여 마이크로필름으로 촬영하였으며, 그 가운데 사료 가치가 높은 것을 선별하여 2001년 『고문서집성』으로 간행되었다. 이구영 소장 고문서 가운데 이주승(李冑承)과 이조승(李肇承)에 관련된 의병 관련 문헌들은 대부분 독립기념관에 기증되었다. 그 외 문헌들은 제천의병도서관에 기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