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30046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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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赤山縣 |
영어음역 | Jeoksan-hyeon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지명/고지명 |
지역 | 충청북도 제천시 |
시대 | 고대/삼국 시대/고구려,고대/삼국 시대/신라,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고려/고려 전기 |
집필자 | 구완회 |
고구려 시대부터 고려 전기까지 충청북도 제천시에 있던 내제군의 영현.
『삼국사기(三國史記)』 지리지의 내제군(奈堤郡) 항목에 “영현(領縣)이 둘인데, 청풍현(淸風縣)은 본디 고구려의 사열이현(沙熱伊縣)인데 경덕왕이 이름을 바꾸어 지금까지 그대로 쓰고, 적산현(赤山縣)은 본디 고구려의 현인데 경덕왕이 그대로 사용하였고 지금의 단산현이다[本高句麗奈吐郡 景德王改名 今堤州 領縣二 淸風縣 本高句麗沙熱伊縣 景德王改名 今因之 赤山縣 本高丘麗縣 景德王因之 今丹山縣]”라고 하였다.
고구려 때 적산(赤山)이란 지명이 붙은 것은 고을의 특징에서 온 것으로 보인다. ‘적(赤)’이란 붉다는 뜻이므로 붉은 고을이라는 말이다. 읍치 일대의 붉은빛이 감도는 산이나 바위에서 비롯된 지명으로 보인다. 훗날 단산(丹山), 단양(丹陽)이란 지명의 출발점이 되었다.
후에 신라에 속하게 된 후에도 그대로 고구려 때의 이름을 썼으며 삭주(朔州)[현 춘천] 관내 내제군의 영현이었다. 고려 초기에 이르러 ‘단산현’으로 바꾸었고 1010년(현종 9) 양광도(楊廣道) 관내인 원주의 영현으로 옮겼다가 나중에 다시 충주 관할로 바꾸었다. 거란 군사가 침입하였을 때 고을 사람이 공을 세워 1318년(충숙왕 5) 승격시켜 ‘지단양군사(知丹陽郡事)’를 파견하는 군(郡)이 되었다. 조선 초에 충청도의 고을이 되었고, 태종 때 단양군으로 이름을 바꾸었으며 1914년 영춘군까지 합하여 오늘날에 이르렀다.
오늘날의 단양군에 해당하며, 단양의 지역성을 잘 드러낸 최초의 지명으로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