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60106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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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仁基 |
이칭/별칭 | 태형(泰亨),산남(山南)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전라남도 화순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만호 |
활동 시기/일시 | 1866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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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기 사항 시기/일시 | 1867년 11월 6일 - 모의정 건립 |
활동지 | 김인기 활동지 - 전라남도 화순군 |
강당 | 모의정 -
전라남도 화순군 춘양면 가봉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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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의병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병인양요 때 의병 활동 |
조선 후기 병인양요 때 활약한 화순 출신의 의병.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태형(泰亨), 호는 산남(山南).
김인기(金仁基)[?~?]는 1866년(고종 3)에 발생한 병인양요 때 같은 고을의 유생(儒生)인 홍기주(洪璣周), 김종룡(金鍾龍), 김종천(金鍾天), 김종문(金鍾文), 윤학모(尹學模) 등 약 200여 명과 함께 현재 화순군 춘양면 가봉리 가승동에서 창의할 것을 다짐하였다. 당시 족질(族姪)인 김종국(金鍾國)도 함께 하였다. 하지만 프랑스군이 이미 토벌되어 기병(起兵) 단계에까지 가지는 못했다.
김인기 등이 창의할 것을 다짐한 장소를 기념하기 위해 1867년(고종 4) 11월 6일 화순군 춘양면 가봉리 동북편에 있는 호미산(虎尾山)에 모의정(募義亭)을 건립하였다. 모의정은 풍우에 무너져 버려서 가봉리 마을 앞 도로변으로 이건하였다가 후에 퇴락하였는데, 1988년 다시 복원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