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60098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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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鄭悅 |
이칭/별칭 | 구보(懼甫),모재(慕齋)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전라남도 화순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안동교 |
출생 시기/일시 | 1575년 3월 12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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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훈 시기/일시 | 1605년 - 정열 선무원종공신 2등 녹훈 |
활동 시기/일시 | 1606년 - 정열 생원시 급제 |
몰년 시기/일시 | 1629년 9월![]() |
출생지 | 정열 출생지 -
전라남도 화순군 이양면 강성리(江聲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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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문인 |
성별 | 남 |
본관 | 하동(河東) |
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의병이자 문인.
본관은 하동(河東). 자는 구보(懼甫), 호는 모재(慕齋). 정여해(鄭汝諧)의 현손이고, 아버지는 내자시주부(內資寺主簿) 정천구(鄭天球)이고 어머니는 남평 문씨(南平文氏) 문탁(文倬)의 딸이다.
정열(鄭悅)[1575~1629]은 임진왜란에 김천일(金千鎰)·송제민(宋齊民)·양산숙(梁山璹)·임환(林懽) 등과 함께 창의하여 의병과 군량을 모으는 일을 맡았다. 금강(錦江) 전투에서 공을 세웠고, 진주성 전투에 참가하고자 남하하였으나 도착하기 전에 성이 함락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통곡하였다.
정유재란에 다시 거의(擧義)하였으며 그 공으로 1605년(선조 38)에 선무 원종 공신(宣武原從功臣) 2등에 녹훈되었다. 「임진 창의 일기」와 「정유 창의 일기」를 남겼다. 1606년에 생원시(生員試)에 합격하고 성균관에서 공부하였다. 이괄(李适)의 난에도 양위남(梁渭南)·배경생(裵慶生) 등과 격문을 돌리고 의병을 모아 출정하였다.
저서로 『모재집(慕齋集)』 1책을 남겼는데 1955년에 후손 주현(珠鉉) 등이 간행하였다.
1605년(선조 38)에 임진왜란에 창의한 공으로 선무 원종 공신(宣武原從功臣) 2등에 녹훈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