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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600897
한자 鳳林寺
영어공식명칭 Bonglimsa Temple
분야 종교/불교
유형 기관 단체/사찰
지역 경기도 화성시 남양읍 주석로80번길 139[북양리 642]
시대 고대/삼국 시대
집필자 김태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중수|중창 시기/일시 1621년 - 봉림사 안모(安暮)·자현(慈賢)이 중수
중수|중창 시기/일시 1708년 - 봉림사 중건
중수|중창 시기/일시 1884년 - 봉림사 중건
중수|중창 시기/일시 1979년 - 봉림사 3층 사리탑 건립
중수|중창 시기/일시 1992년 - 봉림사 요사 개축
중수|중창 시기/일시 1998년 - 봉림사 삼성각 건립
문화재 지정 일시 1989년 4월 10일 - 화성 봉림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보물 제980호로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1991년 9월 30일 - 화성 봉림사 목조아미타불좌상 복장전적 일괄 보물 제1095호로 지정
현 소재지 봉림사 - 경기도 화성시 남양읍 주석로80번길 139[북양리 642]지도보기
성격 사찰
전화 031-356-2060

[정의]

경기도 화성시 남양읍 북양리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본사 용주사 소속 사찰.

[건립 경위 및 변천]

봉림사(鳳林寺)는 신라 진덕여왕 때 고구려의 침략을 불도(佛道)의 힘으로 막기 위하여 창건하였고, 궁궐에서 기르던 봉황새가 절 주위의 숲에 와서 앉아 봉림사라 불렀다고 전해진다. 『신증동국여지승람』 남양도호부 불우조에 ‘봉림사재비봉산(鳳林寺在飛鳳山)’이라는 기록이 전하고, 같은 내용이 『범우고(梵宇攷)』에서도 확인된다. 불상 등의 유물을 통해 고려시대에도 사찰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된다. 1621년(광해군 13) 안모(安暮)·자현(慈賢)이 중수하였다. 1708년(숙종 34)에 중건하였고, 1884년(고종 21) 무렵에도 중건하였다. 1979년에 아미타여래상의 복장(腹藏)에서 나온 사리를 봉안한 삼층 사리탑을 세웠다. 1992년에는 요사를 개축하고, 1998년 삼성각을 건립하였다.

봉림사는 창건 연대를 알 수 없고 개축을 거듭하여 옛 모습을 찾기 어려우나, 고려시대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아미타여래좌상과 2종의 개금기, 복장 유물 등 있다.

[현황(조직,시설 현황 포함)]

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용주사의 말사이다. 봉림사의 현존 당우로는 대웅전과 삼성각·봉향각(奉香閣)·망양루·범종각·요사채 등이 있다. 1988년 7월 28일 전통사찰 31호에 등록되었으며, 2015년 승려 1명과 신도 350명으로 운영되고 있다. 2021년 현재의 주지는 성수(性守)이다. 2012년과 2019년에 걸쳐 방재시스템이 구축되었다.

[관련 문화재]

보물로 지정된 봉림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이 전하고 있다. 1978년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을 개금하는 과정에서 복장에서 발견된 「개금기(改金記)」에 의해 1362년(고려 공민왕 11) 이전에 조성된 아미타불로 알려졌다. 개금 과정에서 발견된 2종의 개금발원문 중 1362년의 개금발원문에는 무량수불을 개금했다는 기록이 있고, 1583년(선조 10)의 개금발원문에는 ‘봉림사당주무량수(鳳林寺堂主無量壽)’라는 사찰명이 등장하는 점이 주목된다. 불상에서 나온 복장전적들은 보물 제1095호로 지정되어 현재 용주사에 소장되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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