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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문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600744
한자 趙文紀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기도 화성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이혜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27년 5월 19일연표보기 - 조문기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42년 10월 - 조문기 일본강관주식회사(日本鋼管株式會社)의 훈련공으로 입소
활동 시기/일시 1943년 5월 - 조문기 일본강관주식회사(日本鋼管株式會社) 파업 주동
활동 시기/일시 1945년 7월 24일 - 조문기 경성 부민관에서 열린 아시아민족분격대회장에 폭탄 투척
활동 시기/일시 1948년 5월 5일 - 조문기 단독정부 수립을 반대하며 북한산에 봉화 올림
활동 시기/일시 1948년 5월 24일 - 조문기 포고 2호 위반과 강도죄로 기소
활동 시기/일시 1985년 - 조문기 광복회 경기도 지부장
활동 시기/일시 1999년 10월 28일 - 조문기 민족문제연구소 제2대 이사장 취임
활동 시기/일시 2005년 3월 25일 - 조문기 회고록 『슬픈조국의 노래』 출판기념회 개최
몰년 시기/일시 2008년 2월 5일연표보기 - 조문기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90년 - 조문기 건국훈장 애국장 서훈
추모 시기/일시 2014년 7월 24일 - 조문기 화성시 매송초등학교 교정에 동상 설립
출생지 경기도 화성시 매송면 야목리 지도보기
거주|이주지 경기도 용인시 양지면
학교|수학지 매송보통학교 - 경기도 화성시 매송면 화성로 2403[현 화성매송초등학교]지도보기
학교|수학지 양지보통학교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교동로 30[현 양지초등학교]
묘소 국립대전현충원 - 대전광역시 유성구 갑동 산23-1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정의]

경기도 화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조문기(趙文紀)[1927~2008]는 1927년 5월 19일 지금의 경기도 화성시 매송면 야목리에서 태어났다. 유년시절 매송보통학교를 다녔으나, 학비를 내기 어려워 용인군 양지면에 있는 외가에서 살았다. 1942년 10월, 일본 도쿄[東京] 근교에 있는 일본강관주식회사(日本鋼管株式會社)의 훈련공으로 입소하였으나, 그곳에서 민족적 차별과 모욕, 학대를 받았다. 조문기는 강윤국(康潤國)·유만수(柳萬秀)와 함께 1943년 5월 조선인 2,000여 명을 규합하여 폭동을 일으키는 등 일본강관주식회사의 파업을 주도하였다. 이후 조문기·강윤국·유만수 세 사람은 국내로 들어와, 1945년 5월 대한애국청년당이라는 비밀결사를 조직하였다.

1945년 7월 24일 경성 부민관에서 열린 아세아민족분격대회장(亞世亞民族憤激大會場)에서 폭탄을 투척하였다. 아세아민족분격대회는 친일단체인 대의당[大義黨, 당수 박춘금]이 주최한 행사로, 일본제국주의를 찬양하고 조선인들의 전쟁 협력을 고양시킬 목적으로 개최된 강연회이었다.

조문기 등은 수색의 군공장에서 다이너마이트를 훔쳐 양철로 싸서 폭탄을 만든 후 화장실과 무대로 들어가는 복도에 폭탄을 설치하였다. 오후 9시 10분 경 폭탄 2개가 연속으로 터져 강연회장은 아수라장이 되고 대의당 당원 1명이 현장에서 사망하였다. '부민관 폭파 의거' 후 일본 경찰은 경찰력을 총동원하여 폭탄을 던진 자들을 찾아내려 했으나, 1945년 8월 15일 광복까지 사건의 진상을 밝혀내지 못하였다.

조문기는 광복 이후에도 활발한 민족운동을 벌였다. 이승만이 단독정부 수립을 밀어붙이자, 안기준·권혁상·유만수 등과 함께 1948년 5월 5일 북한산에 봉화를 올리고 ‘통일정부 수립하자’, ‘단일정부 수립반대’, ‘미군은 물러가라’ 등의 구호가 적힌 현수막을 시내에 내걸기 위하여 하산하다가 경찰에 체포되었다. 1948년 5월 24일 포고 2호 위반과 강도죄로 기소되었고, 1년 6개월간 감옥살이를 하게 되었다.

전쟁 후 10여년 간 유랑 극단 배우로 삶을 살다가, 1959년에는 ‘이승만 대통령 암살, 정부 전복 음모 조작 사건’의 주모자로 몰리는 등 수난을 겪기도 하였다. 1985년부터 광복회 경기도 지부장을 지내었고, 1999년 10월 28일 민족문제연구소 제2대 이사장에 취임하였다.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으로 재직 중이던 2006년 11월 골수종과 파킨슨병 진단을 받고 경기도 수원의료원에서 투병하였으나, 2008년 2월 5일 사망하였다.

[저술 및 작품]

회고록으로 2005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간행한 『슬픈조국의 노래』가 있다.

[묘소]

조문기의 묘는 국립대전현충원에 있다.

[상훈과 추모]

부민관 폭파 의거 공적이 확인되어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았다.

2013년 2월 채인석 화성시장을 비롯해 화성 지역 주민들과 민족문제연구소, 광복회 화성지회, 독립운동가 후손들이 모여 ‘조문기지사 흉상건립추진위원회’를 구성하여 동상 제작을 위한 5,800여만 원의 성금 모금에 나섰다. 2014년 화성시가 2,500여만 원, 국가보훈처가 1,500여만 원을 지원하고 50여 명의 시민들이 1,000여만 원의 성금을 모아 동상 제작을 마쳤다. 동상은 일본군 위안부 소녀상을 제작한 작가 김운성·김서경 부부가 만들었고, 제막식은 부민관 폭파 의거일인 2014년 7월 24일 열렸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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