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6004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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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明皐書院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터 |
지역 | 경기도 화성시 매송면 원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권기중 |
건립 시기/일시 | 1661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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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지 시기/일시 | 1871년![]() |
소재지 | 명고서원 -
경기도 화성시 매송면 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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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서원 |
경기도 화성시 매송면 원리에 있던 조선 후기 사액서원.
명고서원은 1661년(현종 2) 좌의정을 역임한 조익(趙翼)을 배향하기 위해 건립되었다. 1712년(숙종38)에는 조익의 아들인 이조판서 조복양(趙復陽)과 손자 부제학 조지겸(趙持謙)을 추가로 배향했다. 이곳은 화성시 송림동을 중심으로 형성한 풍양 조씨 세거지의 중심부로 기능했다.
명고서원은 1661년(현종 2)에 세워져 1669년(현종 10)에 사액되었다. 명고서원은 본래 조익의 고향인 경기도 광주에 위치했으나, 화성시 송림동에 조익의 5대조 조지진(趙之縝)의 묘소와 조지진의 고택이 있어 이 지역을 중심으로 풍양조씨 세거지가 형성됨에 따라 서원 또한 이곳으로 옮겨졌다. 이후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 의해 훼철되어 지금은 터만 남아있다.
서해안고속도로 비봉IC에서 나와 안산·반월 쪽으로 가면 송라저수지를 지나 원리마을로 들어서게 된다. 원리마을의 끝단이자 79번 도로에 인접한 마을 초입에 서원의 터가 남아 있다.
명고서원이 자리했던 곳은 현재 경작지로 변하여 주초석만 남아있다. 서원터에는 방형초석 4기가 경작지의 끝단에 동~서방향으로 위치해 있는데, 이것은 인근 주민이 경작과정에서 빼내어 옮겨 놓은 것이라 한다. 주변에는 장대석과 밭 하단부에 초석 3기가 굴러 떨어진 채 방치되어 있다.
명고서원에 배향되었던 조익, 조복양, 조지겸은 조선 후기에 좌의정, 대제학, 대사성 등 높은관직을 역임했고, 그 중 조복양은 김상헌의 문인이었으며, 조지겸은 송시열과의 논쟁에 앞장서 소론의 거두로 활동했다. 이들은 19세기 이전 풍양 조씨를 대표하던 인물로써, 이들을 배향했던 명고서원은 풍양 조씨 세거지의 구심점으로 기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