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6004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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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貞淑翁主 胎室碑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비 |
지역 | 경기도 화성시 동탄호수2길 40[송동 727]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권기중 |
건립 시기/일시 | 1588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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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인물 생년 시기/일시 | 1587년 3월 19일 - 정숙옹주 출생 |
관련 인물 몰년 시기/일시 | 1627년 11월 5일 - 정숙옹주 사망 |
문화재 지정 일시 | 2019년 10월 24일![]() |
현 소재지 | 정숙옹주 태실비 -
경기도 화성시 동탄호수2길 40[송동 727]![]() |
성격 | 태실비 |
양식 | 영봉형 비두 |
관련 인물 | 정숙옹주 |
재질 | 석재 |
크기(높이, 너비, 두께) | 183㎝[비좌 제외 높이]|47㎝[비신 너비]|15㎝[비신 두께]|95㎝[비좌 너비]|43㎝[비좌 높이] |
소유자 | 화성시 |
문화재 지정 번호 | 화성시 유형문화재 |
경기도 화성시 송동에 있는 조선 전기 태실비.
정숙옹주 태실비는 조선 선조와 인빈 김씨의 딸인 정숙옹주(貞淑翁主)[1587~1627]의 태실비이다. 태실은 왕실 자녀의 태를 전국 길지에 봉안하는 것으로, 신라에서 시작되어 조선 전기에 이르러 왕실 문화로 정착되었다. 조선 시대에 태는 태아의 생명력을 상징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으며, 태의 보관은 곧 국운과 연관되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이처럼 태를 소중히 여겼기 때문에 조선 왕실에서는 왕자 또는 공주의 태를 보관하기 위해 태실을 조성하고 태실비를 세웠다.
정숙옹주 태실비는 받침돌, 몸돌, 머릿돌로 구성되어 있다. 몸돌과 머릿돌은 하나의 돌로 제작하였고, 받침돌은 별개의 돌로 만들었다. 머릿돌은 둥근 반원형이며, 연잎과 연 줄기가 장식되어 있다. 머릿돌의 맨 위에는 연꽃 봉오리가 조각되어 있다. 받침돌의 윗면은 복련으로 덮여 있고, 측면에는 눈처럼 생긴 모양이 조각되어 있다.
정숙옹주 태실비의 앞면에는 '왕녀아지씨태실(王女阿只氏胎室)', 뒷면에는 '황명만력십육년 칠월십일일 을시립(皇命萬曆十六年 七月十一日 乙時立)'이라고 적혀 있다. 앞면의 명문을 통해 태실비의 주인공이 왕녀임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뒷면의 만력 16년은 1588년(선조 21)에 해당한다. 선조의 왕녀 가운데 1588년 출생한 사람은 없기 때문에, 1587년에 출생한 정숙옹주가 태실비의 주인공으로 보인다.
정숙옹주 태실비는 2019년 10월 24일 화성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정숙옹주 태실비는 경기도 화성시 관내에서 확인된 유일한 태실비이며, 훼손 없이 온전하게 남아 있어 가치가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