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2012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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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進士-九進井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 수동내동길 19[화산리 1010]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남기민 |
수록|간행 시기/일시 | 1994년 12월 15일 - 「이진사와 구진정」, 『우리고장의 전설』에 수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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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지명 | 구진정 -
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 수동내동길 19[화산리 1010]![]() |
성격 | 설화|지명 유래담 |
주요 등장 인물 | 이 진사|주모|아홉 아들 |
모티프 유형 | 귀양간 선비 |
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 화산리에 구진정과 관련하여 전해오는 이야기.
경상남도 함양군 수동중학교 뒤에 구진정이란 우물이 있었다. 이곳에는 조선 시대 이 진사가 정쟁에 휩쓸려 함양군 수동으로 귀양을 와서 특유의 사교적인 성격으로 귀양살이를 잘 이겨내고, 9명의 아들을 모두 진사시에 합격시켰다는 이야기이다.
1994년 함양문화원에서 간행한 『우리고장의 전설』의 236쪽에 수록되어 있다.
이 진사는 어지러운 세상 속에서 권력 투쟁에 휘말려 함양군의 수동 까막섬으로 귀양살이를 오게 되었다. 그의 성품은 활발하고 호방하였으며 사교적이었다. 이 진사는 답답한 귀양살이에 술 생각이 나서, 5리 밖의 사근에 있는 주막에 술을 마시러 갔다가 아름다운 주모를 만났다. 둘은 서로 가까워지고 정이 깊어졌다. 결국 둘 사이에서 자식을 4명이나 얻게 되었다. 그러나 귀양살이하는 몸으로 가당치 않은 일이었지만 그의 인간미 넘치는 성격과 소탈한 모습으로 주위의 인심을 많이 얻었던 덕분에 사면받을 때까지 별 탈 없이 지낼 수 있었다. 사면되기 전에 서울에 있던 부인은 이미 죽었으므로, 이 진사는 정실부인의 다섯 아들을 수동으로 데리고 와서 소실의 아들과 함께 키웠다. 그는 우물물로 막걸리를 만들어 팔아서 아들을 공부시켰는데 아홉 형제가 모두 진사 시험에 합격하였으므로 마을 사람들이 우물 이름을 ‘구진정’이라 하였다.
「이 진사와 구진정」의 주요 모티프는 ‘귀양간 선비’이다. 이 진사는 세파에 휩쓸려 귀양을 가게 된다. 하지만 그의 소탈하고 호방한 성격으로 귀양지에서도 사람들을 많이 사귀게 되었고, 주위 사람들의 인심을 얻게 되면서 아름다운 여인을 소실로 삼게 된다. 게다가 본처와 소실에게서 총 9명의 아들을 얻었는데, 그 아들들이 모두 진사시에 합격하는 영광을 얻게 된다. 이러한 이 진사의 삶에서 우리는 대인관계의 중요성에 대해 배울 수 있고, 스스럼없는 원만한 삶을 사는 것이 자신에게 복된 삶이 될 수 있다는 교훈을 얻게 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