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2003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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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咸陽靑年會 |
영어공식명칭 | Hamyang Youth Association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경상남도 함양군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양미숙 |
설립 시기/일시 | 1920년 8월 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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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설립지 | 양지환 자택 -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죽곡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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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청년 단체 |
설립자 | 양지환|노준영|박수영|권영근 |
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함양 지역에 있었던 청년 운동 단체.
1919년 3.1운동의 영향을 받은 함양 지역 유지 양지환(梁址煥), 노준영(盧俊永), 박수영(朴洙濚), 권영근(權寧根) 등을 중심으로 10여 명이 뜻을 모아 ‘문화 촉진’을 목적으로 설립하였다. 함양청년회는 실력양성운동의 일환으로 설립된 것으로 보인다.
함양청년회는 1920년 8월 1일 경상남도 함양군 석복면 죽곡리 양지환의 자택에서 설립되었다. 함양청년회의 초기 창립 회원 수는 120여 명이었으며, 출연금이 4,200여 원에 달하였다. 설립 당시 임원은 위원장 양지환, 교육위원 김용택(金容宅), 산업위원 노○한(盧○漢)·한정희(韓廷熙), 회계위원 박○○(朴○○), 문서위원 김정언(金正彦), 편집위원 양지환·고용옥(高龍玉)·노준영, 외교위원 노준○(盧俊○)·노장만(盧章滿) 등이었다. 설립 이후 경제력이 떨어져 삼일산업주식회사(三一産業株式會社) 사무실을 빌려 집회를 이어 나갔다. 1926년에는 진흥회를 조직하여 함양청년회 회관 건축을 계획하였다. 창립 당시에는 위원제로 운영되다가 이후 회장제로 변경되었다.
함양청년회 설립 당시 주요 업무는 회보 발간 및 강습회 설치 등 계몽 활동이었다. 1921년 6월 대운동회, 1923년 10월 소년축구대회를 각각 개최하였다. 1923년 2월에 삼일산업주식회사에서 열린 임시총회에서는 면 단위 청년회 조직에 관한 건, 공립보통학교 교실 증축 후원의 건, 민립 대학 설립 발기인 선정의 건, 물산장려 선전과 실행에 관한 건, 연합 청년회 순회 강연 후원의 건 등을 협의하였다.
함양청년회 설립과 활동에 주도 역할을 한 양지환은 1927년 신간회 함양지회가 설립될 때 참여하는 등 신간회에서도 활동하였다. 함양청년회 활동은 함양 지역 독립운동의 중추 역할을 담당하였다는 것에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