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200537 |
---|---|
한자 | 琴隱 實記 |
영어공식명칭 | Geumeunsilgi |
이칭/별칭 | 『금은 선생 실기(琴隱先生實記)』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경상남도 함안군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익재 |
1939년에 간행된 함안 출신의 문신이자 학자인 조열과 관련된 기록을 적은 문집.
조열(趙悅)[?~1939]의 본관은 함안, 호는 금은(琴隱)이다. 아버지는 판도판서(判圖判書)를 지낸 조천계(趙天啓)이다. 거문고와 그림에 능하였다. 운구 서원(雲衢書院)에 제향되어 있다.
『금은 실기(琴隱實記)』는 고려 말기에 벼슬하였던 조열이, 조선 조에 와서도 절개와 지조를 굽히지 않으면서 태조이성계와 정종의 요청을 거부했던 여러 가지 사실들을 상세히 기록한 자료이다. 전쟁을 겪으면서 많은 자료가 없어지고 남은 것이 얼마 없지만, 더 이상의 손실을 막기 위해 조현규(趙顯奎)를 비롯한 후손이 힘을 모아 1939년에 간행하였다. 서문은 김녕한(金寗漢)이 썼다. 『금은 선생 실기(琴隱先生實記)』라고도 불린다.
2권 1책의 목판본이다. 상 일엽 화문 어미(上一葉花紋魚尾)이며, 크기는 가로 20.1㎝, 세로 29.9㎝이며, 반곽의 크기는 가로 15.2㎝, 세로 20.0㎝이다. 1면 9행에 1행의 자수는 16자이다. 주(註)는 쌍행(雙行)이다. 권수제는 '금은 실기(琴隱實記)', 판심제는 '금은 선생 실기(琴隱先生實記)'로 되어 있다. 국립 중앙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권1에는 여러 사람이 함께 지은 시(詩) 「합잠 연구(盍簪聯句)」 1수가 있고, 부록으로 이오(李午)가 쓴 만시(挽詩), 이채(李采)가 쓴 신도비명, 20세손 조덕래(趙德來)가 쓴 비음기(碑陰記), 하겸진이 쓴 묘갈명(墓碣銘) 및 척록(摭錄)과 「운구 서원 사실(雲衢書院事實)」, 「답삼가 유림서(答三嘉儒林書)」, 서원 봉안 때의 고유문(告由文), 봉안문(奉安文), 상향 축문(常享祝文), 이문룡(李文龍)이 지은 「서원 강당 상량문(上樑文)」 등이 실려 있다. 권2에는 후손 조찬규(趙纘奎)가 쓴 「신도비각 이건 개기축문」, 후손 조성탄(趙性坦)이 쓴 「신도비 이건 고유문」, 권재규(權載奎)가 쓴 「원북 재중수기」, 21세손 조현규(趙顯珪)가 쓴 「원북 재중건 상량문」, 「두문동 서원 사실」, 서원 개기축문, 서원 상량문, 봉안문, 상향문, 향례 의절 등이 실려 있다.
『금은 실기』에는 조열이 직접 쓴 글이 수록되어 있지는 않으나, 조열과 관련된 여러 가지 사실을 기록한 자료를 바탕으로 여말 선초의 정권 교체기에 활동하면서 지조를 지켰던 관료이자 선비의 한 전형을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크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