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300212
한자 琴松里
영어공식명칭 Geumsong-ri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전라남도 해남군 산이면 금송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병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연표보기 - 전라남도 해남군 산이면 금송리 개설
금송리 - 전라남도 해남군 산이면 금송리 지도보기
성격 법정리
면적 7.728㎢
가구수 157가구
인구[남/여] 293명[남자 140명|여자 153명]

[정의]

전라남도 해남군 산이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금송리(琴松里)는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금동리의 첫 자와 반송리의 두 번째 글자를 따서 지은 이름이다.

[형성 및 변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산이면의 업자리(業子里)·방축리(防築里)·금동리(琴洞里)·반송리(盤松里)·덕호리(德湖里)의 각 일부 지역을 병합하여 해남군 산이면 금송리로 개설되었다. 현재 업자마을, 방축마을, 금동마을, 시등마을, 반송마을, 대명마을 등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졌다.

업자마을과 금동마을은 1789년에 편찬된 『호구총수』에 산이면에 속한 마을로 나온다. 업자마을은 1400년 말에 제주부씨가 최초로 입향하였다고 전한다. 방축마을은 1500년대 후반에 밀양박씨 박재구(朴載龜)가 정착하여 마을을 이루었다고 전한다. 반송마을은 1592년경 임진왜란을 피하여 진주에서 진주강씨 사람이 이주하여 마을을 형성하였다고 전한다. 시등마을은 금들마을과 한 마을이었으나 1972년에 분리되었고, 시장이 생기면서 시장을 중심으로 마을이 형성되었다. 금등마을은 1590년경 장흥임씨 임익손(林益蓀)이 장흥에서 이주하여 정착하였다고 한다.

[자연환경]

금송리는 큰 산이 없는 마을로, 노송리 사이에 주성산이 있다. 금자천이 금호호로 흘러들어간다. 1996년 영암방조제금호방조제의 간척사업으로 농경지가 늘어났다.

[현황]

금송리(琴松里)는 북쪽으로 영암호, 동쪽으로 노송리, 남쪽으로 황산면 연호리, 서쪽으로 덕호리와 접하고 있다. 북쪽으로 영암호 건너 마산면 연구리가 있다. 2018년 10월 31일 현재 면적은 7.728㎢이며, 업자리, 방축리, 반송리, 시등리, 금등리, 대명리의 6개 행정리에 157가구, 293명[남자 140명, 여자 153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주민 대부분이 농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주 소득원은 쌀이다. 특작물은 겨울배추, 감자, 콩, 마늘, 고구마를 재배하고 있다. 농업용수는 방축저수지, 금동저수지, 대명저수지의 물을 이용하고 있다. 산이농협 농산물저온저장미곡처리장, 방축노인복지회관, 대명영농조합법인 등이 있다. 교통은 지방도 제806호선이 동서 방향으로 지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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