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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부터 1994년까지 경상북도 경산시에 설치되었던 지방 행정 구역. 경산군(慶山郡)은 1895년(고종 32) 경산현(慶山縣)을 개칭한 것으로 1994년 경산시(慶山市)로 개편될 때까지 존재하였다. 지금의 경상북도 경산시를 포함해 대구광역시 수성구 및 동구 일부 지역을 관할하였다. 1895년(고종 32) 정부는 제2차 갑오개혁[을미개혁]의 일환으로 23부제(二十三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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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부터 1895년까지 경상북도 경산시 일대에 설치되었던 지방 행정 구역. 경산현(慶山縣)은 1317년(충숙왕 4) 기존의 경산군(慶山郡)을 승격시키면서 처음 설치되었다. 지금의 경상북도 경산시 동 지역[신천동·남방동·내동·여천동·유곡동·점촌동 제외]과 남천면, 압량읍 북부 지역, 대구광역시 수성구 욱수동·신매동·삼덕동·성동·연호동·고모동·시지동·매호동·사월동·가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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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북도 경산 출신의 학자. 김익동(金翊東)[1793~1860]은 조선 후기 하양현(河陽縣)의 문풍 진작과 향촌 교화를 위해 노력한 인물이다. 김익동의 본관은 청도(淸道)이며, 자는 자익(子翼), 호는 직재(直齋)이다. 고려 평장사 김지대(金之岱)의 후손으로 9대조 할아버지 돈용교위(敦勇校尉) 김충신(金忠臣) 대에 지금의 경상북도 경산시 하양읍 남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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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북도 경산 출신의 학자. 박치준(朴致準)[1838~1898]은 자인향교(慈仁鄕校) 도유사(都有司)로 있으면서 향학의 발전에 기여하고, 서학(西學)의 확산에 대응하여 정통 성리학과 관련한 연구를 진행하였다. 박치준의 자는 성휴(聖休), 호는 희암(希庵), 본관은 밀양(密陽)이다. 봉상시 주부를 지낸 요산(樂山) 박운달(朴雲達)[1491~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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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북도 경산에 부임한 지방관. 임선백(任善伯)[1596~1656]은 1632년(인조 10)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1637년(인조 15) 초대 자인현감(慈仁縣監)을 역임하였다. 임선백의 본관은 풍천(豐川), 자는 경여(慶餘)이다. 조선 전기 참지문하부사(參知門下府事)를 지낸 임구(任球)의 8대손으로 아버지는 이조정랑을 지낸 임장(任章), 어머니는 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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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부터 1598년까지 경상북도 경산 지역을 비롯해 조선 전역에서 일어난 일본과의 전쟁.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경산·하양·자인에서는 많은 인사들이 창의(倡義)하여 왜군을 방어하고, 다른 고을의 의병들과 합세하여 영천·성주·경주 수복 전투에도 참여하였다.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이 발발하자 관군에 배속되거나 의병으로서 울산 도산성 전투 등에 참전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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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부터 1914년까지 경상북도 경산시 일대에 설치되었던 지방 행정 구역. 자인군(慈仁郡)은 1895년부터 1914년까지 지금의 경상북도 경산시 자인면·용성면·남산면, 진량읍 남부 일대를 관할했던 지방 행정 구역이다. 1895년(고종 32) 정부는 제2차 갑오개혁[을미개혁]의 일환으로 23부제(二十三府制)를 실시함으로써 효율적인 지방통치를 도모하였다. 아울러 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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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7년부터 1895년까지 경상북도 경산시 일대에 설치되었던 지방 행정 구역. 자인현(慈仁縣)은 757년(경덕왕 16) 노사화현(奴斯火縣)을 개칭하여 설치되었다. 지금의 경상북도 경산시 자인면·남산면·용성면과 진량읍 남부 지역을 관할하였다. 별호는 ‘기화(基火)’ 또는 ‘인산(仁山)’이다. 자인현은 757년 군현제(郡縣制)를 강화하고, 명칭을 한자식으로 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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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경상북도 경산 출신의 문신. 전한(全翰)[1488~1544]은 1517년(중종 12) 문과에 급제한 후 호조 좌랑(戶曹佐郎)·합천군수(陜川郡守)·양주목사(楊州牧使)·해주목사(海州牧使) 등을 지냈다. 전한의 본관은 옥산(玉山)[경산(慶山)], 자는 문경(文卿), 호는 경재(敬齋)이다. 고려 신호위 대장군을 지내고 옥산군(玉山君)에 봉해진 전영령(全永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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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경상북도 경산 출신의 문신. 전헌(全獻)[?~?]은 1522년(중종 17) 문과에 급제하였다. 문과에 급제할 당시 작성한 대책문은 경제에 대한 정책의 모범 답안으로 평가되어 『동책정수(東策精粹)』에 수록되었다. 전헌의 본관은 옥산(玉山)[경산(慶山)], 자는 징지(徵之)이다. 전헌은 고려 신호위 대장군을 지내고 옥산군(玉山君)에 봉해진 전영령(全永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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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부터 1863년까지 경상북도 경산 지역의 역사와 문화. 현재의 경산은 조선 시대 경산현(慶山縣)·하양현(河陽縣)·자인현(慈仁縣)으로 나뉘어 있었다. 고려 시대에 세 현은 경주부의 속현으로 있었지만 조선이 건국되면서 경산과 하양은 독립현이 되었다. 하지만 자인은 1637년(인조 15)까지 경주부의 속현으로 남아있었다. 경산·하양·자인은 현으로서는 규모가 작았기에 하양은 안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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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북도 경산 출신의 학자. 지덕붕(池德鵬)[1804~1872]은 하양현(河陽縣) 출신의 유학자로서 학문과 행의로 명성이 높았다. 경상도 관찰사의 요청으로 낙육재(樂育齋)에서 강학하고, 만년에는 관유정(觀遊亭)을 지어 후학을 양성하였다. 지덕붕의 본관은 충주(忠州)이며, 초명은 상일(祥日), 자는 군거(君擧), 호는 상산(商山)이다. 7대조 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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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북도 경산 출신의 의인. 지봉채(池鳳彩)는 18세기 후반 대기근이 일어나자, 원납곡을 내어서 하양현민(河陽縣民)들을 구휼하는 데 일조하였다. 지봉채는 중국에서 귀화한 지경(池鏡)의 후손이다. 그의 선대는 고려 말부터 조선 초기까지 현달한 인물들이 많았지만, 7대조 할아버지 송화 현감 일청(一淸) 지연(池淵) 이후 관직에 진출한 인물들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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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북도 경산 출신의 의병. 진섬(陳暹)[?~1592]은 한강(寒岡) 정구(鄭逑) 문하에서 학문을 배웠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동생 진엽(陳曄)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다. 진섬(陳暹)의 초명은 황(晃)이며, 자는 여명(汝明), 호는 성재(成齋), 본관은 진산(珍山)이다. 6대조 할아버지 성암(誠庵) 진하(陳夏)[1419~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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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북도 경산 출신의 의병. 최동립(崔東立)[?~?]은 은거 학자로서 생활하던 중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최문병(崔文炳)과 함께 일본군을 물리쳤다. 전란이 끝난 후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에 녹훈되었다. 최동립의 본관은 영천(永川)이며, 자는 대보(大輔), 호는 낙수(樂水)이다. 고조할아버지는 우재(愚齋) 최익생(崔益生)으로 홍문관 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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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북도 경산 출신의 의병장. 최문병(崔文炳)[1557~1599]은 임진왜란 때 자인 의병장으로 활약하였다. 용계서원(龍溪書院)에 제향되었다. 최문병이 의병활동을 할 때 사용한 안장이 보물 제747호[최문병 의병장 안장]로 지정되어 있다. 최문병의 본관은 영천(永川), 자는 일장(日章), 호는 성재(省齋)다. 최문병의 시조는 연산부원군(燃山府院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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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북도 경산 출신의 의병. 임진왜란 당시 최식(崔湜)[?~?]을 비롯한 삼형제가 의병을 일으켜 많은 공을 세웠다. 최식은 이후 선무원종공신 2등에 녹훈되었다. 최식의 본관은 양천(陽川)이며, 호는 퇴당(退堂)이다. 세조 대에 경상도 감사를 역임했던 최숙형(崔淑亨)의 7대손이다. 형은 최항(崔沆)이며, 동생은 최결(崔潔)이다. 최식의 선대(先代)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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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북도 경산 출신의 의병. 최응담(崔應淡)[1564~1593]은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고향인 경산현(慶山縣)을 방어하였으며, 영천성(永川城) 수복 전투에도 참전하였다. 최응담의 본관은 흥해(興海), 초명은 대기(大期), 자는 군응(君應), 호는 회당(悔堂)이다. 시조는 고려 검교장군을 지낸 최호(崔湖)로 군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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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북도 경산 출신의 의병. 최인수(崔仁壽)[1525~1594]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아버지 최철견(崔鐵堅) 등 가족들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으며, 군공을 세워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에 녹훈되었다. 최인수의 본관은 영천(永川)이며, 자는 안일(安一)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성균관 생원(生員) 최계생(崔季生)이며, 할아버지는 전라도사를 역임하였던 난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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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북도 경산 출신의 의병. 최준립(崔竣立)[1562~1640]은 무과에 급제하였으며,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창의하여 군공을 세웠다. 전란 후에는 포도대장(捕盜大將)을 역임하였다. 최준립의 본관은 영천(永川)이며, 자는 경앙(景仰)이다. 고조할아버지는 성균관 생원(生員) 최계생(崔季生)이며, 증조할아버지는 전라도사를 역임하였던 최철견(崔鐵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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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경상북도 경산에 정착한 문신. 최철견(崔鐵堅)[1525~1594]은 전라도사(全羅都事) 재임 중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관군으로 활약하였으며, 귀향해서는 손자와 함께 의병을 일으켰다. 최철견의 본관은 영천(永川)이며, 자는 중경(重卿), 호는 난포(蘭圃)이다. 고조할아버지는 감사를 역임하였던 최응(崔凝)이며, 증조할아버지는 경상도사(慶尙都事)를 지낸 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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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북도 경산 지역 출신의 열부. 최태상(崔泰尙)의 처 조씨(趙氏)[?~1745]는 조선 후기 경상도 하양현(河陽縣) 출신으로 평민(常人) 최태상(崔泰尙)의 부인이다. 급류에 휩쓸린 남편을 구하다가 세상을 떠났으며, 열행이 알려져 지역에서 열부(烈婦)로 추앙하였다. 최태상의 처 조씨는 1745년(영조 21) 여름에 최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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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북도 경산 출신의 의병. 최팔개(崔八凱)[1560~?]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동생 최팔원(崔八元)과 함께 동래성(東萊城) 전투에 참전하였다. 최팔개의 본관은 흥해(興海)[곡강(曲江)], 자는 성거(聖擧), 호는 죽은(竹隱)이다. 고조할아버지 최지형(崔沚瑩)은 성균관 전적을 역임하고 처가인 밀양으로 이거하여 살았다. 고조할머니는 밀양 손씨이다. 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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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북도 경산 출신의 의병. 최팔원(崔八元)[1562~1592]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형 최팔개(崔八凱)와 함께 송상현(宋象賢)을 구원하기 위해 동래성(東萊城) 전투에 참전하였으며, 부산진에서 왜적과 싸우다 순절하였다. 최팔원의 본관은 흥해(興海)[곡강(曲江)], 자는 군거(君擧), 호는 죽포(竹圃)이다. 고조할아버지 최지형(崔沚瑩)은 성균관 전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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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북도 경산 출신의 의병. 최항(崔沆)[?~?]은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두 동생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왜적을 토벌하는 데 많은 공을 세웠으며, 삼형제가 모두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에 녹훈되었다. 최항의 본관은 양천(陽川)이다. 세조 대에 경상도 감사를 역임했던 최숙형(崔淑亨)의 7대손으로 동생은 최식(崔湜)과 최결(崔潔)이다. 최항의 선대(先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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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북도 경산 출신의 의인. 태순헌(太淳憲) 가문의 사람들은 17세기 이래로 경산현(慶山縣)에 세거해오면서, 현민(縣民)들을 구휼하기 위하여 막대한 전곡(錢穀)을 희사(喜捨)하였다. 태순헌도 구휼에 동참하여 부역을 면제받았다. 태순헌의 본관은 영순(永順)이다. 사헌부 집의(司憲府執義) 태두남(太斗南)의 손자인 태순금(太舜琴)이 임진왜란 이후 예천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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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부터 1914년까지 경상북도 경산시 일대에 설치되었던 지방 행정 구역. 하양군(河陽郡)은 1895년부터 1914년까지 지금의 경상북도 경산시 하양읍과 와촌면, 대구광역시 동구 일대에 있었던 지방 행정 구역이다. 1895년(고종 32) 정부는 제2차 갑오개혁[을미개혁]의 일환으로 23부제(二十三府制)를 실시함으로써 효율적인 지방통치를 도모하였다. 아울러 부·대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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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8년부터 1895년까지 경상북도 경산시 일대에 설치되었던 지방 행정 구역. 하양현(河陽縣)은 고려 초 하주(河州)였다. 1018년(현종 9) 하양으로 개칭하고 현이 되었다. 지금의 경상북도 경산시 하양읍·와촌면과 진량읍 북부 지역, 그리고 대구광역시 동구 각산동·괴전동·동내동·매여동·신서동 일대를 관할하였다. 고을 이름인 ‘하양’은 금호강이 굽이쳐 흐르는 북쪽에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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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북도 경산 지역에 정착한 문신. 한순(韓珣)[1557~1627]은 효행으로 천거되어 조봉대부(朝奉大夫) 군자감 직장(軍資監直長) 등을 지냈다. 광해군 연간 해주옥사(海州獄事)를 풍자하는 시를 지었다가 국문을 당하였다. 경산의 청주 한씨 입향조이다. 한순의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동옥(東玉), 호는 고봉(鼓峰)이다. 임진왜란 후 성주(星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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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북도 경산 출신의 의병. 황경림(黃慶霖)[1566~1629]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신해(申海) 등과 함께 하양현(河陽縣)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황경림의 자는 경서(景瑞), 호는 면재(勉齋)·면와(勉窩), 본관은 장수(長水)이다. 고조할아버지는 교위(校尉) 황유계(黃有繼)이며, 증조할아버지는 판윤 황혁정(黃赫禎), 할아버지는 참봉 황헌(黃憲)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