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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태
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5402
한자 鄭成太
영어공식명칭 Jung Sungtae
분야 정치·경제·사회/정치·행정,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인물(일반)
지역 광주광역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노기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15년 7월 28일연표보기 - 정성태 출생
수학 시기/일시 1940년 - 정성태, 보성전문학교 법학과 졸업
활동 시기/일시 1954년 - 정성태, 제3대 국회의원 당선
활동 시기/일시 1958년 - 정성태, 제4대 국회의원 당선
활동 시기/일시 1960년 - 정성태, 제5대 국회의원 당선
활동 시기/일시 1963년 - 정성태, 제6대 국회의원 당선
활동 시기/일시 1967년 - 정성태, 제7대 국회의원 당선
활동 시기/일시 1971년 - 정성태, 제8대 국회의원 당선
몰년 시기/일시 2000년 8월 17일연표보기 - 정성태 사망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50년 - 정성태, 전라남도 광주상업고등학교[현 광주동성고등학교] 교장 역임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70년 - 정성태, 제5대 국회부의장으로 선출
출생지 정성태 - 전라남도 광주군
성격 교육가|정치인
성별
본관 하동(河東)
대표 경력 국회 부의장

[정의]

광주시 출신으로, 해방 이후 6선 국회의원을 지낸 정치인이자, 교육자이자 사회운동가.

[개설]

1950년 광주상고 교장으로 재직하고, 1954년 제3대 때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제4대·제5대·제6대·제7대·제8대 6선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1970년 6월부터 1971년 6월까지 국회 부의장직을 역임하였다.

[가계]

본관은 하동(河東). 1915년 7월 28일 전라남도 광주군에서 태어났으며, 부인 최봉진 사이에 4남 2녀를 두었다. 조카 정두언(鄭斗彦)[1957. 3. 6.~2019. 7. 16, 전 국회의원]과 일족으로 정율성(鄭律成)[1914. 7. 7.~1976. 12. 7, 귀화한 공산주의 음악인, 작곡가] 등이 있다.

[활동 사항]

전라남도 광주 출신으로 1940년 보성전문학교 법학과를 졸업하였고, 1945년 보성전문학교 교사를 지냈다. 일제강점기에 국민회의 전남도지부 청년부장으로 활동하였다. 해방 직후에는 공무원이 되어 사회부 감사과장 등을 지냈다. 1950년 공무원을 사퇴하고 2대 광주지역 국회의원에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고, 이후 광주상업고등학교[현 광주동성고등학교] 교장으로 재직하였다. 1954년 광주시 일원 제3대 국회의원[1954. 5. 31.~1958. 5. 30.]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광주에서 민주주의의 신념과 민권 수호를 위한 정치로 민중편에 서서 일관되게 활동하였다. 광주시 갑일원 제4대 국회의원[1958. 5. 31.~1960. 7. 28.] 선거에서 민주당 소속으로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정성태는 깨끗한 정치생활로 광주시민의 신망(信望)을 모았다. 광주시 갑일원 제5대 국회의원[1960. 7. 29.~1961. 5. 16.] 선거에 민주당 소속으로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광주시 갑일원 제6대 국회의원[1963. 12. 17.~1965. 6. 22.] 선거에 민중당 소속으로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64년 한일협정 반대 운동에 참여하였으며, 1965년 8월 13일 한일협정 비준에 항의하고 민중당 탈당계를 제출하여 국회의원직을 상실하였다.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 신민당 소속으로 출마하여 광주 지역구에서 당선되었다. 광주시 갑일원 제7대 국회의원[1967년 7월 1일~1971년 6월 30일] 선거에 민중당 소속으로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69년 8월 31일 광주시에서 박정희의 집권 연장을 위한 3선 개헌 반대를 위한 천리길 도보 행군을 결행하여 세상에 호소하였다. 3선 개헌 반대 천리길 헌정 수호 행진은 11일 동안 대장정으로 서울에 입성하려다가 경찰에 저지당하고 서울 삼청동 자택으로 끌려 가기도 하였다. 1970년 6월부터 1971년 6월까지 국회 부의장직을 역임하였다. 광주시 갑일원 제8대 국회의원[1971. 7. 1.~1972. 10. 17.] 선거에 민중당 소속으로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정성태는 언제나 민주·민중 투쟁에 앞장 선 정치인이었다. 정성태는 6선 국회의원을 지냈으나, 1973년 제9대 국회의원 선거에 낙선하고 정계에서 은퇴하였다. 정성태는 민주주의 사회의 민주 투사로서 큰 족적을 남겼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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