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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서석산기」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5367
한자 登瑞石山記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작품/문학 작품
지역 광주광역시 북구 금곡동
시대 근대/근대
집필자 고성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저자 생년 시기/일시 1858년 - 조종덕 출생
저자 몰년 시기/일시 1927년 - 조종덕 사망
편찬|간행 시기/일시 1957년연표보기 - 「등서석산기」 『창암문집』 권6에 수록
배경 지역 무등산 - 광주광역시 북구 금곡동 지도보기
성격 유산기
작가 조종덕

[정의]

근대 학자 조종덕이 전라도 광주 지역에 있는 무등산을 유람하고 지은 글.

[개설]

「등서석산기」를 지은 조종덕(趙鍾悳)[1858~1927]의 자는 성훈(性薰), 호는 창암(滄庵)이며, 본관은 옥천(沃川)이다. 아버지는 조형규(趙亨圭), 어머니는 임상휴(任相休)의 딸인 풍천임씨(豊川任氏)이다. 연재(淵齋) 송병선(宋秉璿), 심석(心石) 송병순(宋秉珣)에게 수학하였다. 나라가 어지러워지자 벼슬을 하지 않고 학문에 힘썼다. 1905년 스승인 송병선이 을사늑약에 분개하여 자결하니 이에 심상(心象)[상복은 입지 않으나 상제와 같은 마음으로 말과 행동을 삼하고 조심함]하였고, 스승의 유고를 간행하였다. 1910년 이후 소화둔인(小華遯人)으로 칭하며 은거하였다. 저서로 『동사기략(東史記略)』, 『조씨문헌고(趙氏文獻考)』, 『창암문집(滄庵文集)』 등이 있다. 「등서석산기」는 『창암문집』 권6에 실려 있다.

[구성]

「등서석산기」는 유산의 동기와 주상절리의 형상에 대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내용]

1. 유산의 동기

조종덕은 「등서석산기」 서두에서 지리지의 말을 인용하여 무등산을 설명한다. 그리고 자신이 이러한 산과 가까운 곳에서 태어난 것이 다행이라고 밝힌다. 다음은 조종덕이 무등산을 오르게 된 과정을 적은 내용이다.

[본문 번역]

호남 광주에 크고 이름난 산이 있다. 지리지에 이르기를, '무등'이라 하고, 또 '서석'이라고도 한다. 남방의 맑고 깨끗한 기운이 날아올라 넓고 큰 기세가 드높아 아주 뛰어난 승경이 여기에 다 있다. 그리고 지금은 주먹 하나 크기의 돌이 많고 그 높이는 천만 길이나 된다. 나는 다행히 이 산에서 칠팔십 리 떨어진 구귀봉 아래에서 태어났다. 스승을 따라 도를 배우며 일찍이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는 말을 들었고, 늘그막에는 성인이신 공자가 동산에 올라 노나라가 작다고 탄식한 데에서 느낌이 있었다. 때는 노나라 은공 원년 기미년 가을이었다. 나의 벗 석성(石醒), 석남(石南) 두 사람과 동복의 용계동에서 만나기로 약속하였는데, 공교롭게도 때마침 만나 서로 즐거워하며 안태중 군의 집에서 이틀을 머물렀다. 청호거사 김상영의 고상한 풍도를 듣고 여러 날을 종유하였으며, 그 자취를 감추고 수신하면서 세속에 물들지 않는 뜻을 흠모하며 시로써 칭송하였다.

또 창평 망월촌의 벗 고광록을 방문하여 당나라 사람의 화조, 산수 명화 구본을 보았다. 그리고 계전당 김정일이 벽에 쓴 시에 차운하였다. 추석의 석양이 비출 무렵 곧바로 규봉암을 향하여 광석대에 올랐다. 곁에 풍혈대가 있어 벼랑을 부여잡고 몸을 돌려 겨우 구멍을 통하여 나와 보니 아래에 있는 석실은 대여섯 명은 들어앉을 수 있으니 이는 곧 보조국사가 옛적에 머물다 가신 곳이다. 광석대로 돌아오니 대 곁에는 서울의 현달한 인사들의 이름과 시구가 여럿 새겨져 있다. 반나절을 지나 작은 석문을 넘고 구불구불한 길을 천천히 걸어 지장암에 이르렀다. 주지 스님은 외출하고 다만 보살과 비구니 스님만 있었다. 범우[절]는 깨끗하고 북쪽 벽을 보니 유리 감실 안에 크고 작은 금불이 있었다. 곁의 작은 방 한 칸이 있어 이를 빌려 하루 묵었다. [후략]

2. 주상절리의 형상

조종덕은 규봉암, 광석대, 풍혈대, 천황봉, 서석대, 입석대의 순으로 유람하였다. "연이은 봉우리들이 나는 듯이 아래로 서석대에 이르러 구름이 이는 깊은 곳에 속세를 벗어나 혼연히 하늘을 이루었다"고 표현하며 "곤륜산에 옥이 솟은 기상과 방불"하다고 표현한다. 이는 다른 산에서는 볼 수 없는 광경이라며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특징]

「등서석산기」에서 '서석산'은 무등산을 이르는 별칭이다. 비교적 짧은 길이의 유산기로 유람의 행적이 단순하다. 그러나 서석대입석대의 주상절리에 대한 묘사는 뛰어난 입체감을 주고 있다는 점이 독특하다.

[의의와 평가]

「등서석산기」는 근대 학자로서 어지러운 세상에 분개하며 평생을 은거하였던 지식인이 무등산에 대해 가진 의식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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