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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무등산」[조팽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4901
한자 遊無等山-趙彭年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작품/문학 작품
지역 광주광역시 북구 금곡동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황민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저자 생년 시기/일시 1549년 - 조팽년 출생
저자 몰년 시기/일시 1612년 - 조팽년 사망
배경 지역 무등산 - 광주광역시 북구 금곡동 지도보기
성격 한시
작가 조팽년

[정의]

조선 시대 문신인 조팽년이 전라도 광주 지역의 무등산을 유람하고 쓴 연작시.

[개설]

「유무등산(游無等山)」을 지은 조팽년(趙彭年)[1549~1612]의 본관은 한양(漢陽)이고 자는 경로(景老), 호는 계음(溪陰)이다. 1573년에 생원이 되었고 1576년에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이후 전의현감에 재임하였다가 조급하고 절도가 없다[조망(躁妄])는 이유로 사간원의 탄핵을 받아 파직되었다. 1599년에는 여산군수로 재임하였는데, 정사를 아전에게 맡겨 요역이 고르지 못하고 쇄마(刷馬)[지방에 배치했던 관청용 말]를 개인적으로 운용했다는 탄핵을 받고 파직되었다. 이후 병조판서로 추증되었고, 전라남도 강진군 옴천면의 주봉서원에 제향되었다. 저서로는 『계음집(溪陰集)』이 있다. 「유무등산」은 『계음집』 제2권에 수록되어 있다.

[구성]

「유무등산」무등산을 유람한 내용을 1구에 5자씩 모두 4구로 이루어진 오언절구로 쓴 총 11수의 연작시이다.

[내용]

「유무등산」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 수는 무등산을 오르기 전에 보는 무등산의 전경을, 두 번째 수는 증심사에서 유숙하며 본 밤의 모습을, 세 번째 수는 송광대(松廣臺)의 절경을, 네 번째 수는 무등산을 이루는 여러 봉우리의 아름다움을 그리고 있다. 다섯 번째 수는 산을 즐겼던[樂山] 옛 성현들을 돌아보고 배움으로 삼는 내용을, 여섯 번째 수는 무등(無等)이라는 이름의 뜻을, 7~9번째 수는 산행의 즐거움을 그리고 있다. 열 번째 수는 정상에서 신선처럼 노니는 즐거움을, 마지막 열한 번째 수는 산속에서 살고 싶은 산행의 여흥을 읊고 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수는 다음과 같다.

유무등산(游無等山)[무등산을 유람하며]

[첫 번째 수]

서석고잠천공벽(瑞石高岑天共碧)[서석산 봉우리 하늘처럼 푸르니]/ 군산공읍차조종(羣山拱揖此朝宗)[뭇 산들 읍하며 조회하듯 하는구나]/ 거승지설림간경(居僧只說林間景)[거승은 다만 숲 사이 경치를 말하지만]/ 부식영수등제일봉(不識須登第一峯)[모르겠다만 제일봉을 올라야겠지]

[두 번째 수]

기마도계우일계(騎馬渡溪又一溪)[말 타고 시내 건너니 또 시내가 흐르고]/ 징심사이모운저(澄心寺裏暮雲低)[징심사 안에는 저문 구름 낮게 깔려 있네]/ 야심산월교여촉(夜深山月皎如燭)[깊은 밤 산 달은 밝기가 촛불 같은데]/ 천척고송쾌골서(千尺高松快鶻棲)[천 척 높은 솔에 날랜 매가 깃드네]

* 징심사(澄心寺)무등산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사찰로, 지금은 증심사(證心寺)라고 부른다.

[의의와 평가]

「유무등산」조팽년의 시 세계 일면을 엿볼 수 있는 작품으로, 조선 후기 문인들의 무등산 유람 양상을 확인할 수 있는 시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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