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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흥동 대문산마을 당산제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4340
한자 文興洞大文山-堂山祭
이칭/별칭 문흥동 대문산마을 동제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의례/제
지역 광주광역시 북구 문흥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부유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중단 시기/일시 1990년대 이후 - 문흥동 대문산마을 당산제 중단
의례 장소 할아버지당산 - 광주광역시 북구 문흥동 대문산마을지도보기
의례 장소 할머니당산 - 광주광역시 북구 문흥동 대문산마을지도보기
성격 마을 공동 제사
의례 시기/일시 정월 열나흗날 자정부터 대보름날 새벽까지
신당/신체 할아버지당산[느티나무 숲]|할머니당산[느티나무]

[정의]

광주광역시 북구 문흥동 대문산마을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기 위해 정월 열나흗날 자정부터 대보름날 새벽까지 지냈던 마을 공동 제사.

[개설]

문흥동 대문산마을 당산제는 정월 열나흗날 자정부터 대보름날 새벽까지 대문산마을의 할아버지당산과 할머니당산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며 마을 사람들이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이다.

[연원 및 변천]

문흥동 대문산마을 당산제의 시작 시기는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1990년대 이후 도시 개발로 중단되어 현재는 진행되지 않고 있다.

[신당/신체의 형태]

대문산마을 뒤쪽의 커다란 느티나무가 할아버지당산의 신체였는데, 광복 이후 태풍 피해로 쓰러졌다. 이후 주변에 나무들이 숲을 이루어 이를 할아버지당산으로 여겼다. 할머니당산은 마을 앞의 느티나무가 신체 역할을 하였다. 할머니당산 밑에는 높이 136㎝, 너비 70㎝, 둘레 165㎝인 입석이 있다.

[절차]

문흥동 대문산마을 당산제는 정월 7~8일경 마을회의를 열어 생기복덕(生氣福德)[생기법으로 본 길일과 사람이 태어난 생년월일의 간지를 팔괘로 나누어 가린, 길한 일진의 날]이 맞는 남성 가운데 제관, 축관, 화주, 집사 등을 뽑는다. 이들은 제사가 끝날 때까지 용변을 보면 목욕재계를 하여 정결함을 유지하고, 부정한 곳을 출입하지 않는다. 제비(祭費)는 가족 구성원 개별로 거출하였다. 제비를 비롯하여 제사에 사용할 쌀 등은 제미화주가 거둔다. 제일(祭日)에 사용하는 제물(祭物)은 원화주가 준비한다. 정월 11일부터 제관(祭官)뿐 아니라 온 마을 주민이 제사를 위해 정성을 다했다. 젓갈이 들어간 김치를 비롯하여 비린 음식은 일절 먹지 않았다. 제물은 정월 12일 양동시장에서 돼지머리, 삼실과, 소고기, 나물류, 북어, 조기, 김, 초, 향, 소지용 종이, 제기 등을 구입한다. 할아버지당산과 할머니당산에 쓸 제물은 성격이 달라 각각 따로 구입한다. 이때 물건 값을 깎아서는 안 된다. 제기(祭器)는 매년 새로 사서 제사가 끝나면 화주가 갖는다. 제주(祭酒)는 화주가 담근 청주를 사용한다. 제사 음식을 장만할 때에는 머리에 수건을 쓰고 따로 입마개를 하여 청결함을 유지하고, 음식 간도 보지 않는다. 정월 열사흗날에는 당산 주변, 마을 입구, 제관 집 등을 청소하며, 왼새끼에 백지를 끼운 금줄을 치고 금토를 놓아 부정의 출입을 막는다.

당산제는 할아버지당산에서 정월 열나흗날 자정쯤에 제를 먼저 지낸 다음, 닭이 운 뒤에야 마을 앞 할머니당산에서 제를 올린다. 먼저 열나흗날 자정이 되기 전 화주집에서 준비한 제물을 할아버지당산으로 가지고 간다. 할아버지당산에는 비린 생선류를 제외한 시루떡, 삼실과, 나물, 돼지머리 등을 진설하고 메를 올린다. 제사는 유교식으로 진행된다. 먼저 향을 피우고 초를 켜 제단을 정화시킨 후 '강신→참신→초헌→독축→개반삽시→아헌→종헌→소지→재배→헌식'의 순으로 이어진다. 할아버지당산의 제사가 끝나면 마을 앞의 할머니당산으로 옮겨 가 준비한 제물을 진설한다. 할머니당산에는 비린 생선류가 더해지며 나머지 진설과 제차(祭次)는 할아버지당산과 동일하나, 제사의 시작과 끝에 풍물을 치는 점이 다르다. 헌식할 때에는 당산 밑을 파서 돼지머리와 함께 제물을 조금씩 나누어 한지에 싸서 묻는다.

[축문]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내용의 축문을 읊었다고 하나 구체적인 문안은 확인할 수 없다.

[부대 행사]

당산제가 끝나고 정월대보름 오전에 당산제 때 준비한 제물의 음복을 겸하여 마을의 중요한 안건을 결정하는 목청계를 열어, 한해 품삯의 결정이나 공동 관심사 등 마을 운영 전반을 논의한다. 이날부터 각 가정을 방문하여 마당밟이를 하는데, 이때 거출한 돈과 곡식은 마을 공동 자금으로 사용하였다. 당산제 후 집집마다 일정량의 볏짚을 거두어 마을 안 사거리에서 줄을 드리는데, 괴목나무에 걸어 50m 가량 되는 큰 줄을 만든다. 2월 초하루에 이 줄로 음지와 양지로 편을 나누어 풍년을 기원하는 외줄다리기를 하였다.

[현황]

문흥동 대문산마을 당산제는 정확한 연대는 확인할 수 없으나, 1990년대 이후 도시 개발로 중단되어 현재는 실행되지 않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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