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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2198
한자 李東宣
영어공식명칭 Lee Dongseon
이칭/별칭 삼산동선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광주광역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노기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09년 7월 17일연표보기 - 이동선 출생
수학 시기/일시 1925년 - 이동선 광주사범학교 입학
수학 시기/일시 1928년 3월 - 이동선 광주사범학교 졸업
활동 시기/일시 1929년 - 이동선 봉안보통학교 교사 임용
활동 시기/일시 1929년 11월 - 이동선 일본 경찰에 체포
활동 시기/일시 1930년 10월 - 이동선 광주지방법원에서 징역 2년형 선고
활동 시기/일시 1931년 6월 - 이동선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형 확정
추모 시기/일시 1977년연표보기 - 이동선 대통령 표창 수여
추모 시기/일시 1990년연표보기 - 이동선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출생지 전라남도 광산군 대촌면 호석리 600
거주|이주지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응암동 243
학교|수학지 광주사범학교 - 전라남도 광주부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대표 경력 성진회 회원|독서회중앙본부 회원

[정의]

일제강점기 전라남도 광주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유공자.

[개설]

이동선(李東宣)[1909~?]은 전라남도 광주 지역의 항일 학생 결사 단체 성진회(醒進會) 회원으로 활동하였다. 광주사범학교 졸업 후 성진회 후신인 독서회(讀書會) 조직 확대에 주력하다가 광주학생독립운동 후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활동 사항]

이동선광주사범학교 3학년 재학 중인 1927년 4월 하의철(河誼喆), 박무길(朴武吉) 등과 함께 민족 차별 교육을 일삼던 일본인 교사 에다[江田]를 다른 학교로 몰아내는 데 앞장섰다. 또한, 광주 지역의 항일 학생 결사 단체인 성진회 회원으로 교내 조직 확대에 주력하였다.

1927년 3월 성진회가 5개월 만에 형식상 해체된 뒤 주동 학생들은 각급 학교 단위로 항일 활동을 계속하였다. 이동선은 1928년 3월에 있을 졸업을 앞두고 2학년 학생 최상호(崔相鎬), 김기주(金基柱), 강달모(姜達模) 등과 교내 항일 의식 선전 활동을 벌였다. 또한, 최규창(崔圭昌)·문승수(文升洙) 등 광주 지역 학생 지도자들과 함께 광주군 서방면 두암리[지금의 광주광역시 북구 두암동] 소재 지용수(池龍洙)의 집에 모여 졸업 후 민족운동 방안에 대하여 숙의하였다. 그리고 앞으로 학교 졸업 후 사회에 진출하여서도 성진회 활동을 계속하기로 결의하였다.

1929년 6월 이동선성진회 회원들은 광주 지역 김기권(金基權)의 집에서 독서회중앙본부(讀書會中央本部)를 결성하였다. 1929년 이동선은 전라남도 담양군 무정면 봉안보통학교 교사로 임용된 뒤에도 독서회 활동을 계속하였다.

1929년 11월 3일 광주학생운동이 일어나자 이동선은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독서회 구속 관련자가 광주고등보통학교, 광주사범학교, 광주농업학교, 광주공립여자고등보통학교 등에서 85명에 달하였다. 이동선은 일제에 붙잡힌 뒤 모진 고문을 당하고, 1930년 10월 광주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형을 선고받았다. 이에 항소하여 1931년 6월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겪었다.

[상훈과 추모]

1977년 대통령 표창을 수여하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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