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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상
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2139
한자 李周庠
영어공식명칭 Lee Jusang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광주광역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송보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67년 10월 11일연표보기 - 이주상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 10일 - 이주상 광주 3.10만세운동 참여
활동 시기/일시 1919년 4월 30일 - 이주상 광주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4월, 집행유예 2년 선고받음
활동 시기/일시 1920년 6월 21일 - 이주상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0월 선고받음
몰년 시기/일시 1948년 5월 2일연표보기 - 이주상 사망
추모 시기/일시 2006년연표보기 - 이주상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출생지 전라남도 광주군 본촌면 일곡리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대표 경력 국민회 회원

[정의]

광주 3.10만세운동에 참여한 전라남도 광주 지역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이주상(李周庠)[1867~1948]은 전라남도 광주군 본촌면 일곡리[지금의 광주광역시 북구 일곡동]에서 태어났으며, 본관은 광산(光山)이다. 두 아들과 함께 광주 3.10만세운동에 참여하였으며, 국민회(國民會)에 가입하여 활동을 전개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활동 사항]

1919년 3월 10일 이주상은 두 아들 이윤호(李允鎬), 이창호(李昌鎬)와 함께 독립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다. 삼부자(三父子)가 참여한 전라남도 광주 지역의 독립만세 시위는 1919년 3월 10일 부동교 아래 강둑 작은장터에서 시작되었다. 1919년 3월 10일 오후 2시경 시위 군중은 태극기를 흔들고 "대한 독립 만세"를 부르며 강변 작은장터로 모여들었다.

당시 마을 유지였던 이주상은 본천면 일곡리와 우치면 생룡리 일대 수백 명의 마을 사람들을 동원하여 시위 행렬에 합세하였다.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며 시위 행진을 전개하다가 체포되어 1919년 4월 30일 광주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4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1919년 6월경부터는 전라남도 기독교인 사이에 조직된 국민회에 가입하여 회원 모집과 독립운동 자금 모집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 과정에서 다시 체포되었고, 1920년 6월 21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0월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주상은 1948년 5월 2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2006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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