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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익
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2123
한자 徐在益
영어공식명칭 Seo Jaeik
이칭/별칭 서재옥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광주광역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병남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05년연표보기 - 서재익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27년 - 서재익 광주청년동맹 가입
활동 시기/일시 1928년 8월 5일 - 서재익 전남소년연맹 창립 총회 참가 후 체포되어 구금
활동 시기/일시 1928년 8월 24일 - 서재익 광주고등보통학교 동맹 휴학 반대 인사들을 비판하는 전단 인쇄 및 살포
활동 시기/일시 1930년 11월 - 서재익 조선청년동맹 중앙집행위원 선출
활동 시기/일시 1934년 3월 - 서재익 징역 3년 선고받음
몰년 시기/일시 1943년연표보기 - 서재익 사망
추모 시기/일시 2005년연표보기 - 서재익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출생지 광주광역시 남구 대촌동 지도보기
학교|수학지 광주제일고등학교 - 광주광역시 북구 독립로237번길 33[누문동 144]지도보기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대표 경력 조선청년동맹 중앙집행위원

[정의]

일제강점기 전라남도 광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서재익(徐在益)[1905~1943]은 전라남도 광주군 대촌면 칠석리[지금의 광주광역시 남구 대촌동]에서 태어났다. '달리는 서재옥(徐在玉)'으로도 불렸다. 광주청년동맹(光州靑年同盟)에 가입하여 활동하였고, 조선청년동맹(朝鮮靑年同盟) 중앙집행위원으로 선출되어 청년 계몽 및 민족 문제 해결을 위하여 활동하다가 1931년 5월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활동 사항]

서재익은 1927년 광주청년동맹에 가입하여 활동하였고, 1928년 8월 5일 전남소년연맹 창립 총회에 참가하였다가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며칠간 구금되기도 하였다.

1928년 4월 11일 밤, 광주고등보통학교[지금의 광주제일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던 이경채(李景采)가 '‘조선독립선언문'이라는 제목의 격문을 붙이는 등의 일로 학교 당국으로부터 퇴학 처분을 받게 되었다. 이에 광주고등보통학교 학생들이 5개월간 동맹 휴학을 벌였을 때인 1928년 8월 24일 서재익은 자신의 집에서 임주홍(林周弘), 정동화(鄭東華), 박세영(朴世英), 서재호(徐在皓), 윤승현(尹昇鉉)과 공모하여 동맹 휴학 반대 인사들을 비판하는 내용의 전단을 인쇄하여 전라남도 광주 지역에 살포하는 등 항일 학생운동을 전개하였다. 이 일로 서재익은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1930년 11월에는 조선청년동맹 중앙집행위원으로 선출되어 청년 계몽 및 민족문제 해결을 위하여 활동하다가 1931년 5월 체포되어 1934년 3월 징역 3년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렀다. 이후에도 일제 당국의 감시를 받으며 어렵게 지내다가 1943년 6월 23일 전라남도 광주에서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200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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