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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파트리치오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2001
영어공식명칭 Patrick Brennan
이칭/별칭 패트릭 브레넌 몬시뇰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종교인
지역 광주광역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집필자 양라윤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01년연표보기 - 안 파트리치오 출생
출가|서품 시기/일시 1928년 12월 8일 - 안 파트리치오 사제 서품
수학 시기/일시 1928년 - 안 파트리치오 신학교 졸업
활동 시기/일시 1937년 - 안 파트리치오 한국 선교사로 임명되어 전라남도 광주로 파송
활동 시기/일시 1938년 - 안 파트리치오 강원도 원주본당으로 파견되어 활동
활동 시기/일시 1941년 - 안 파트리치오 일제에 의해 본국으로 추방
활동 시기/일시 1949년 11월 2일 - 안 파트리치오 제4대 천주교 광주대교구장으로 부임
몰년 시기/일시 1950년 9월 23일~9월 26일 - 안 파트리치오 사망
출생지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
활동지 천주교 광주대교구 - 광주광역시 서구 상무대로 980[쌍촌동]지도보기
성격 신부
성별
대표 경력 천주교 광주대교구 4대 교구장

[정의]

천주교 광주대교구 4대 교구장으로 사목 활동을 하다 6.25전쟁 때 순교한 미국 출신의 신부.

[개설]

안 파트리치오[Patrick Brennan] 신부는 1901년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에서 태어나 1922년 신학교에 입학하였으며, 1928년 12월 8일 졸업과 동시에 사제(司祭) 서품을 받았다. 1936년 아일랜드의 골롬반 외방선교회에 입회하였고, 1937년 한국 선교사로 임명되어 입국하였다. 1942년 일제의 종교 탄압으로 본국으로 추방되었으나, 1949년 11월 2일 천주교 광주대교구 제4대 교구장으로 임명됨과 동시에 몬시뇰(Monsignor) 칭호를 받고 한국으로 다시 돌아왔다. 안 파트리치오는 교구장으로서 새 본당 설립과 사목 활동에 전념하였으나,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여 인민군에 의해 피랍되었고, 충청남도 대전 지역에서 순교한 것으로 알려졌다.

[활동 사항]

안 파트리치오천주교 광주대교구 제4대 교구장으로서 전라남도 광주 지역의 사목 활동과 새 본당 설립에 주력하였다. 1949년 전라남도 광주 지역에는 북동성당 한 곳밖에 없었는데, 신자 수의 증가와 사목 활동을 위해 새 본당 설립을 주도하였고, 1949년 12월 8일 두 번째 성당인 남동성당이 설립되었다.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자 전국 각지에서 성직자들이 공산당들에게 체포되어 수난을 당했고, 안 파트리치오는 골롬바노회 신부들을 데리고 목포로 피난하였다.

1950년 7월 24일 새벽, 안 파트리치오는 목포 산정동성당 주임 신부인 토마스 쿠삭(Thomas Cusack)[고토마스 또는 고도마], 보좌 신부인 존 오브라이언(John O'Brien)[오요한]과 함께 인민군들에 의해 목포경찰서 유치장에 감금되었다가 광주교도소로 이송되었다. 유엔군의 반격이 심해지자 인민군들이 후퇴하면서 9월 23일~9월 26일 대전 목동성당의 프란치스코 수도원에서 세 사제가 피살된 것으로 추정된다.

[상훈과 추모]

전라남도 목포시 산정동성당에 순교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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