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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1976
한자 房明達
영어공식명칭 Bang Myeongdal
이칭/별칭 휘언(輝彦),달부(達夫),화엄(花嚴)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광주광역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박미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활동 시기/일시 1627년 - 방명달 문서유사(文書有司)로 부임
성격 의병
성별
대표 경력 문서유사(文書有司)

[정의]

조선시대 정묘호란 당시 전라도 광주 출신의 의병장.

[가계]

방명달(房明達)[?~?]의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휘언(輝彦), 달부(達夫), 호는 화엄(花嚴)이다. 직제학(直提學) 방사량(房士良)의 8세손이며, 아버지는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 강령현감(康翎縣監)을 지낸 방복령(房復齡)이다.

[활동 사항]

방명달은 전라도 광주에 거주하였으며, 효심이 지극하였다. 1627년(인조 5)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김장생(金長生)을 도와 문서유사(文書有司)가 되어 의병을 모집하였다. 고순후(高循厚)가 호남 의병장으로서 왕세자를 전주까지 호종할 때 함께 하였다. 전주에 도착한 후 화의했다는 소식을 듣고 고부민(高傅敏), 고부립(高傅立), 유술(柳述)고순후를 따라 광주 지역에서 창의한 인물들과 함께 세자를 여산(礪山)까지 호송하였다. 그 후 광주 지역으로 돌아와서 여생을 보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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