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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1964
한자 梁山龍
영어공식명칭 Yang Sanryong
이칭/별칭 우상(宇翔)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광주광역시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문다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552년연표보기 - 양산룡 출생
활동 시기/일시 1579년 - 양산룡 식년시 합격
몰년 시기/일시 1597년연표보기 - 양산룡 사망
추모 시기/일시 1635년 - 양산룡 정려(旌閭)
묘소 양씨삼강문 - 광주광역시 광산구 박호동 산131-5 지도보기
성격 효자·열녀|의병·독립운동가
성별
대표 경력 운량장(運糧將)

[정의]

조선 후기 전라도 광주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효자.

[가계]

양산룡(梁山龍)[1552~1597]의 본관은 제주(濟州), 자는 우상(宇翔)이다. 양사위(梁思渭)의 후손으로, 증조할아버지는 양이하(梁以河), 할아버지는 양팽손(梁彭孫), 아버지는 양응정(梁應鼎)이다. 어머니는 박중윤(朴仲允)의 딸 죽산박씨(竹山朴氏)이다. 형은 양산해(梁山海), 동생은 양산숙(梁山璹), 양산축(梁山軸)[또는 양산수(梁山岫)]이다.

[활동 사항]

양산룡은 1579년(선조 12)에 식년시에 합격하였다. 양산룡은 1587년(선조 20)에 상소를 올려 심암(沈巖)의 죄를 고발하였으며, 1589년(선조 22)에는 전라도 유생 정암수(丁巖壽) 등과 함께 이산해(李山海), 정언신(鄭彦信), 정인홍(鄭仁弘), 류성룡(柳成龍) 등을 멀리할 것을 상소하였다가 추국(推鞠)당하였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송제민(宋齊民) 등과 나주에서 의병을 일으켜 김천일(金千鎰)의 막하에서 운량장(運糧將)으로 활동하였다.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 당시 나주 삼향포(三鄕浦)[또는 삼양포(三洋浦)]에서 왜적을 만나 어머니와 동생 양산축과 함께 순절하였다.

[상훈과 추모]

1635년(인조 13) 전라도 생원 홍탁(洪逴) 등의 상소로 양산숙과 양씨 집안의 효자, 열녀, 절부 각 2명씩 7명을 표창하여 정려문(旌閭門)이 세워졌다. 이때 양산룡은 효자로 정려(旌閭)되었다. 이 정려문은 1803년 '양씨삼강문'이라는 현판이 제작되었으며 1985년 광주광역시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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