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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1958
한자 朴海量
영어공식명칭 Park Haeryang
이칭/별칭 도겸(道謙),율수(聿修)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광주광역시 광산구 장수동
시대 조선/조선 후기,근대/개항기
집필자 문다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50년연표보기 - 박해량 출생
몰년 시기/일시 1886년연표보기 - 박해량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09년 - 박해량의 유고집 『율수재유고(聿修齋遺稿)』 간행
출생지 장수리 - 광주광역시 광산구 하남동 지도보기
수학|강학지 율수재 - 광주광역시 광산구 장수길 33[장수동 410]지도보기
성격 문인·학자
성별
본관 순천(順天)

[정의]

조선 후기와 개항기 전라도 광주 출신의 문인.

[가계]

박해량(朴海量)[1850~1886]의 본관은 순천(順天), 자는 도겸(道謙), 호는 율수(聿修)이다. 증조할아버지는 박달진(朴達鎭), 할아버지는 박성락(朴聖洛), 아버지는 박정현(朴鼎鉉)이다. 부인은 임기휴(林基休)의 딸 임씨와 김노휴(金盧休)의 딸 김씨이며, 아들은 박현동(朴玄東)[1886~1962]이다.

[활동 사항]

박해량은 1850년(철종 1) 전라도 광주 장수리에서 태어났다. 면암 최익현의 「율수재행장(聿修齋行狀)」에 따르면, 박해량은 외모와 풍채가 뛰어나고 사색(辭色)의 기운이 온화하며 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고 시문의 착상이 빠르며 글씨의 필법이 대단하였다고 한다. 박해량은 고산(鼓山) 임헌회(任憲晦)[1811~1876], 중암(重菴) 김평묵(金平黙)[1819~1891], 면암(勉庵) 최익현(崔益鉉)[1833~1907],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1798~1879]에게서 학문을 터득하였으며, 특히 스승인 최익현과의 관계가 각별하여 최익현이 제주도와 흑산도에 유배되었을 때도 최익현과 왕래하면서 수학하였으며, 경서에 대한 토론과 시국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현재 박해량(朴海量)과 아들 박현동이 강학하던 율수재(聿修齋)[광주광역시 광산구 장수동]가 남아 있다. 박해량은 1886년(고종 23)에 37세로 사망하였다.

[학문과 저술]

박해량이 저술한 『해상일기(海上日記)』는 최익현이 제주도와 흑산도에 유배되었던 1873년부터 1876년까지 최익현과 왕래하며 수학하였던 당시의 일기이다. 1909년 박해량의 아들 박원동은 박해량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율수재유고(聿修齋遺稿)』를 간행하였다. 총 6권 3책이며 책머리에 기우만의 서문, 시 58수, 서 60편, 기 1편, 제문 4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상훈과 추모]

스승이었던 최익현은 박해량을 추모하며 「율수재행장」을 지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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