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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1907
한자 金逈
영어공식명칭 Kim Hyung
이칭/별칭 숙명(叔明),명암처사(鳴巖處士),구필암 선생(口必瘖先生)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광주광역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이바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543년연표보기 - 김형 출생
거주|이주지 죽령산(竹嶺山) - 광주광역시 남구 대촌동 지도보기
성격 문인
성별
본관 광산(光山)

[정의]

조선 전기 전라도 광주 출신의 문인.

[가계]

김형(金逈)[1543~?]의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숙명(叔明)이고 호는 명암처사(鳴巖處士)이다. 할아버지는 김석(金碩)이며, 아버지는 김충남(金忠男)이다. 부인은 부호군 이란(李鸞)의 딸 전주이씨(全州李氏)이고, 아들은 김성로(金成輅)이다.

[활동 사항]

김형은 1543년(중종 38) 전라도 광주에서 태어났다. 고경명(高敬命)의 문하에서 공부하였으며, 문장과 덕행이 뛰어나 사림의 중망(重望)을 얻었으나 과거시험을 보지 않아 벼슬길로 나아가지 않았으며 세속과 인연을 끊고 은거하였다. 『광주읍지(光州邑誌)』 고적조에 "죽령산(竹嶺山)에 있는 바위에서 김형이 그 아래 서실(書室)을 짓고 시를 지어 바위를 읊으니 바위가 수일 동안 울다 그쳐 이를 명암(鳴巖)이라 하였는데, 당시 사람들이 김형명암처사(鳴巖處士)라고 불렀다."라고 전한다. 또, 고경명의 「응제앵운(應製鶯韻)」을 차운(次韻)하기를, "십 리[4㎞] 밖 꾀꼬리 소리, 낮 다듬이 소리와 어울리네. 규중의 사모하는 여인 몇 번이나 바느질 손을 멈췄을까. 푸른 버들가지 위에 천반(千般)의 말, 앵무새 너를 보면 입이 반드시 벙어리되리[十里鶯聲和午砧閨中思婦幾停針綠楊枝上千般語鸚鵡看渠口必]."라고 하였다. 이 시가 세상에 회자되어 사람들이 김형을 ‘구필암 선생(口必瘖先生)’이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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