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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개
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1906
한자 朴漑
영어공식명칭 Park Gae
이칭/별칭 대균(大均),연파(煙波)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광주광역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이바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511년 12월 11일연표보기 - 박개 출생
활동 시기/일시 1570년 - 박개 장원 부임
활동 시기/일시 1573년 - 박개 고산현감 부임
몰년 시기/일시 1586년연표보기 - 박개 사망
거주|이주지 고산(高山) - 전라북도 완주와 충청남도 논산 일대
거주|이주지 김제(金堤) - 전라북도 김제시
성격 문신
성별
본관 충주(忠州)
대표 관직|경력 한성부참군(漢城府參軍)|장원(掌苑)|고산현감(高山縣監)|김제군수(金堤郡守)

[정의]

조선 전기 전라도 광주 출신의 문신.

[가계]

박개(朴漑)[1511~1586]의 본관은 충주(忠州), 자는 대균(大均), 호는 연파(煙波)이다. 증조할아버지는 박소(朴蘇)이고, 할아버지는 박지흥(朴智興)이다. 아버지는 박우(朴祐)이고, 어머니는 생원 김효정(金孝禎)의 딸 당악김씨(棠岳金氏)이며 동생은 박순(朴淳)이다. 부인은 죽산박씨(竹山朴氏)이며, 측실(側室)에게서 5남을 낳았는데 박응령(朴應苓), 박응룡(朴應龍), 박응귀(朴應龜), 박응봉(朴應鳳), 박응린(朴應麟)이다.

[활동 사항]

박개는 1511년(중종 6) 12월 11일에 태어났다. 처음 향시(鄕試)에 응시하여 양장(兩場)에서 장원으로 뽑혀 한양에 가서 회시(會試)를 보려는데, 한 선비가 넘어져 밟혀 죽었으나 아무도 돌보지 않는 모습을 보고 분노하며 돌아와 다시는 과거를 보지 않고 초연하게 지냈다. 유일(遺逸)로 여러 번 천거되어 명종대 선공감주부(繕工監主簿), 참봉(參奉) 등이 제수되었으나 벼슬에 나아가지 않았다. 선조가 박개의 시를 접하고 등용하여 한성부참군(漢城府參軍)을 제수하였다. 1570년 장원(掌苑), 1573년 고산현감(高山縣監), 김제군수(金堤郡守) 등을 역임하였다. 1586년(선조 19)에 병에 걸려 76세로 사망하였다.

[학문과 저술]

박개는 미암(眉巖) 유희춘(柳希春)과 교유하였는데, 유희춘과 주고받은 시와 편지가 유희춘의 일기에 전하며, 죽은 유희춘을 추모하기 위해 박개가 지은 제문(祭文)이 『미암집(眉巖集)』에 실려 있다.

[묘소]

박개의 묘소는 연파정(烟波亭)의 서쪽 언덕에 장사지내고 부인 죽산박씨 옆에 묻었다고 전해져 오나, 구체적인 위치는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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