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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백춘
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1904
한자 李白春
영어공식명칭 Lee Baekchun
이칭/별칭 영경(榮卿)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광주광역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이바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537년연표보기 - 이백춘 출생
활동 시기/일시 1558년 - 이백춘 사마시 입격
활동 시기/일시 1590년 - 이백춘 사옹원봉사에 임명
몰년 시기/일시 1592년 9월 22일연표보기 - 이백춘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97년 - 이백춘 호국사 배향(配享)
출생지 방혜마을 - 광주광역시 광산구 등임동 지도보기
묘소|단소 광주광역시 북구 일곡동 지도보기
사당|배향지 호국사 - 충청남도 보령시 성주면 성주산로 367-1
성격 문신
성별
본관 함평(咸平)
대표 관직 사옹원봉사(司饔院奉事)

[정의]

조선 전기 전라도 광주 출신의 문신.

[가계]

이백춘(李白春)[1537~1592]의 본관은 함평(咸平), 자는 영경(榮卿)이다. 고조할아버지는 이근종(李根宗), 증조할아버지는 이종우(李從愚)이다. 할아버지는 이정전(李庭荃), 아버지는 이윤(李倫)이다. 부인은 유신손(柳神孫)의 딸 문화유씨(文化柳氏)이다. 아들은 이경립(李景立), 이홍립(李弘立)이다.

[활동 사항]

이백춘은 1537년(중종 32) 광주 방혜마을[현재의 광주광역시 광산구 등임동]에서 태어났다. 이백춘은 천성이 강직하고 문학이 뛰어났다. 1558년(명종 13)에 사마시에 입격하였으며, 1590년(선조 23)에 사옹원봉사(司饔院奉事)에 임명되었다. 사옹원은 조선시대 국왕의 식사와 대궐 내 음식 공급에 관한 일을 관장하는 관서이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 선조가 피난하여 평양에 머물렀는데, 이때 원리에서부터 제조(提調)에 이르기까지 사옹원 소속 관리들이 모두 도망갔다. 이백춘은 사옹원을 지키며 끝까지 떠나지 않고 있다가 왜적에게 사로잡혔으나, 적을 꾸짖으며 굴복하지 않다가 9월 22일 순절하였다.

[묘소]

이백춘의 묘소는 본래 광주광역시 영락면 용산리에 있다가, 1980년 9월 20일에 광주광역시 북구 일곡동으로 이장하였다.

[상훈과 추모]

이백춘은 1605년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 2등에 녹훈되었다. 1997년 충청남도 보령시에 있는 호국사(護國寺)에 이백춘의 위패를 봉안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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