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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1775
한자 吳伯顔
영어공식명칭 Oh Baekan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광주광역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홍창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활동 시기/일시 1465년 - 오백안 문과 급제
묘소|단소 광주광역시 남구 석정동 석정마을 지도보기
성격 문관
성별
본관 낙안(樂安)
대표 관직 예문관한림|홍문관대제학|전라도사

[정의]

조선 전기 광주 지역 출신으로 예문관한림, 홍문관대제학, 전라도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가계]

오백안(吳伯顔)의 본관은 낙안(樂安)이며, 아버지는 오척(吳陟)이다.

[활동 사항]

오백안에 대한 기록이 많지 않아 활동 사항을 자세하게 알 수 없다. 『국조문과방목(國朝文科榜目)』에는 오백안이 1465(세조 11)년에 식년시(式年試)에 병과(丙科) 4위로 급제하였으며, 아버지는 오척으로 소개되어 있다.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권 49, 제계고 10에는 낙안오씨(樂安吳氏)의 시조를 오백안(吳白顔)이라 소개하고 있다. 또한, “조선조에 문과에 급제하여 전라평사(全羅評事)를 지냈다. 오척(吳陟)의 아들이다.”라는 분주(分註)가 확인되는데, 오백안을 이르는 말이다. 『광주읍지(光州邑誌)』에는 “낙안오씨이니, 세조 을유(1465)에 문과에 급제하여 한림(翰林)이 되었다.”라고 간략하게 기록되어 있으며, 『호남인물지(湖南人物志)』에는 이와 더불어 “낙안(樂安) 고읍(古邑)에서 광주 대촌면 석정리로 옮겨 살았다.”라는 정보가 확인된다. 오백안의 묘소가 지금의 광주광역시 남구 석정동 석정마을에 있다고 하는 것으로 볼 때, 오백안은 광주 지역 일대에서 주로 활동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묘소]

오백안의 묘소는 광주광역시 남구 석정동 석정마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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