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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1764
한자 李梅|李枚
영어공식명칭 Lee Mae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광주광역시
시대 고려/고려 후기,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문다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활동 시기/일시 1419년 - 이매 충청우도 수군도만호로 재직 시 왜구 침탈에 맞서 출병하지 않아 처벌
거주|이주지 광주광역시 북구 운암동 대내마을 지도보기|용산마을지도보기
성격 관리
성별
본관 광산
대표 관직 충청우도 수군도만호|이조참의|가선대부이조참판

[정의]

조선 전기에 광주 지역 출신으로 충청우도 수군도만호 등을 역임한 관리.

[가계]

이매(李枚)의 본관은 광산(光山)이다. 할아버지는 한림공(翰林公) 이숙백(李淑白)이며 아버지는 이순(李順)이다. 형은 이초(李椒)이며 형조정랑(刑曹正郞), 나주교수관(羅州敎授官), 지고부군사(知古阜郡事) 등을 지냈다. 1990년대 도시화 이전까지 이매의 후손들이 광주광역시 운암동 대내마을, 용산마을에 살았다.

[활동 사항]

이매의 출생과 사망, 활동에 대해서는 상세하게 전해지지 않는다. 이매는 진사(進士)를 거쳐 1408년(태종 8) 식년시(式年試) 동진사(同進士) 18위로 문과에 급제하였다. 1419년(세종 1)에 왜구가 황해도에서 충청도까지 이르러 안흥량(安興梁)에 들어와 전라도(全羅道)의 공선(貢船) 9척을 노략질하고 쓰시마섬[對馬島]으로 가는 사태가 발생하였다. 당시 충청우도 수군도만호(忠淸右道水軍都萬戶)로 있던 이매는 군사를 내어 대응하지 않아 사형의 처분을 받았으나 감형되어 삭직충군(削職充軍)되었다. 이매는 1420년(세종 2)에 사면되었고, 이후 이조참의(吏曹參議)와 가선대부이조참판(嘉善大夫吏曹參判)에 이르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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