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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약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1755
한자 金若采
영어공식명칭 Kim Yakchae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광주광역시
시대 고려/고려 후기,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문다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활동 시기/일시 1388년 - 김약채 지신사에 임명된 후 탄핵으로 유배
활동 시기/일시 1400년 - 김약채 사병 혁파 및 대공·왕실의 친족과 부마에게 직사를 맡기지 못하도록 상소
활동 시기/일시 1400년 - 김약채 대사헌에 임명
활동 시기/일시 1400년 - 김약채 천도 문제 논의 참여
활동 시기/일시 1401년 - 김약채 변남룡 부자 재판 문제로 탄핵받아 파면
활동 시기/일시 1404년 - 김약채 충청도도관찰사 부임
성격 문관
성별
본관 광산
대표 관직 좌사의대부|지신사|대사헌|충청도도관찰사

[정의]

고려 후기와 조선 전기 광주 지역 출신으로 좌사의대부, 지신사, 대사헌과 충청도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가계]

김약채(金若采)의 본관은 광산(光山)이며, 아버지는 광성군(光城君) 김정(金鼎)이다. 동생은 김약항(金若恒)이다.

[활동 사항]

김약채는 고려 공민왕 때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성품이 강직하여 권세가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김약채는 우왕 때 좌사의대부(左司義大夫)로 조반(趙胖)[1347~1401]의 옥사를 다스리는 데 참여하였는데, 염흥방(廉興邦)[?~1388]이 조반에게 강제로 형벌을 가하려고 하자, 홀로 불가하다고 주장하여 마침내 조반을 석방하게 하였다. 1388년(우왕 14) 이성계(李成桂)[1355~1408]가 위화도에서 회군하자 이에 대항하여 우왕이 구원병을 모집하는 과정에서 지신사(知申事)에 임명되었으나 회군이 성공한 이후 사헌부(司憲府)의 탄핵을 받아 유배되었다.

1400년(정종 2) 문하부좌산기(門下府左散騎)로 있을 때는 사병을 혁파할 것과 대공(大功)의 친족, 종친, 부마에게 직사를 맡기지 말 것을 상소하였다. 같은 해에 대사헌(大司憲)을 지냈으며, 천도(遷都) 문제 논의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김약채는 1401년(태종 1) 변남룡(卞南龍) 부자에 대한 재판 과정의 문제로 탄핵받아 파면되었다가 1404년(태종 4) 충청도도관찰사(忠淸道都觀察使)가 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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