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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0994
한자 范世東先生墓
영어공식명칭 Tomb of Beom Se-dong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능묘
지역 광주광역시 광산구 덕림동 산94-1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김정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피장자 몰년 시기/일시 1397년(추정) - 범세동 사망
문화재 지정 일시 1998년 2월 21일연표보기 - 범세동선생묘 광주광역시 기념물 제23호 지정
현 소재지 범세동선생묘 - 광주광역시 광산구 덕림동 산94-1 지도보기
성격 묘역
양식
관련 인물 범세동
봉분 크기/묘역 면적 8m[봉분 지름]|1,190㎡[묘역 면적]
관리자 금성범씨 시랑공파 종중
문화재 지정 번호 광주광역시 기념물 제23호

[정의]

광주광역시 광산구 덕림동에 있는 고려 후기의 문신 범세동의 묘역.

[위치]

범세동선생묘광주광역시 광산구 덕림동 산 94-1번지 일원에 있다. 묘역은 높이 70m의 구릉지에서 남향으로 자리잡고 있으며, 동쪽으로 180m 떨어진 지점에 평림천이 흐르고 있다. 이 일대에는 구릉지와 곡간평지가 형성되어 있다.

[피장자 정보]

범세동(范世東)[? ~ 1397?]의 본관은 금성(錦城), 자는 여명(汝明), 호는 복애(伏崖)이다. 고려 후기의 문신이자 포은 정몽주(鄭夢周)의 제자로 고려 말기 공민왕 때 덕령부윤, 간의대부 등을 지냈다. 조선 왕조의 개창을 반대하며 고향인 광주[현 광주광역시 광산구 복만동]에 은거하여 성리학 연구에 몰두하였다. 저서에는 『동방연원록(東方淵源錄)』이 있다. 조선 태종이 여러 차례 벼슬을 권하였으나 끝내 사양하였으며, 사후 후덕군(厚德君)에 봉해지고 문충(文忠)의 시호를 받았다.

[형태]

범세동선생묘역에는 묘, 조선 초기에 제작된 묘비와 문인석이 배치되어 있고, 후대에 세워진 범세동의 존비속 제단, 상석, 양석, 동자석, 망주석 등이 있다. 묘비는 머리와 몸체를 하나의 대리석으로 만들어 화강암 사각 대좌에 맞추어 세웠다. 묘비 높이는 165㎝이며 이수(螭首)는 조선 전기에 유행하였던 연잎을 무늬로 새기고 정상에 보주(寶珠)를 만들었다. 문인석은 높이 210㎝로 각이 진 관모를 쓰고 두 손을 가슴에 모아 홀(笏)을 들었다.

[금석문]

비신 앞면에는 오른쪽부터 2행으로 음각시문(陰刻施文)되었는데, 세로 방향으로 ‘여조충신덕령부윤범공세동 배정부인장수이씨지묘(麗朝忠臣德寧府尹范公世東配貞夫人長水李氏之墓)’라 쓰여 있고 두 행의 사이에 22자의 작은 글씨가 있었던 흔적이 있으나 끝부분의 ‘지묘(之墓)’를 제외하고는 판독하기 어렵다. 오른쪽 면에는 ‘오호관작성명이십이자불□완□유(嗚呼官爵姓名二十二字不□頑□有)’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

[현황]

범세동선생묘는 중요성이 인정되어 1998년 2월 21일에 광주광역시 기념물 제23호로 지정되었다. 금성범씨 시랑공파 종중에서 관리하며, 1966년 묘역에 금성범씨의 시조를 비롯한 3위의 제단을 설치하여 매년 양력 4월 첫째 일요일에 제사 지내고 있다.

[의의와 평가]

범세동의 정확한 사망 연도는 알 수 없으나 묘의 형태와 묘역에 설치된 묘비와 문인석을 통해 조선 전기 사대부의 무덤 양식을 잘 알 수 있는 자료로 의의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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