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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0961
한자 書院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광주광역시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박효주

[정의]

조선시대 광주 지역에서 명현을 제사하고 인재를 키우기 위해 세운 사설 기관.

[개설]

서원(書院)은 조선시대에 향교와 더불어 지방에 있는 양대 교육기관의 하나였다. 관학(官學)인 향교에 비해 서원은 16세기 중반 이후 학문 연구와 선현(先賢) 제사를 위하여 사림(士林)이 설립한 사설 교육기관인 동시에 향촌 자치 기구였다. 서원은 사우(祠宇)와 거의 비슷한 의미로 쓰이기도 하는데, 엄밀한 의미에서 서원은 학문 전수와 향사(享祀), 곧 제사 기능을 겸하였고, 사우는 제사만을 수행하였다.

조선에서 서원이 나타나게 된 것은 사림의 향촌 사회 세력 기반 구축 시도와 관련된다. 정국의 주도권을 잡고 있던 훈구(勳舊) 계열에 맞서 향촌 사회에서 사림의 구심체 역할을 하던 기존의 유향소(留鄕所)가 몇 차례 사화(士禍)를 거치며 제구실을 못 하게 되자, 이를 대체하기 위하여 그동안 학문적 역량을 축적하고 수적 확대를 이룬 사림이 서원을 세운 것이다. 서원이 출현한 또 다른 배경은 관학의 부진이었다. 당시 관학은 학문과 관계없이 관료 자제들이 출세를 위해 거치는 장소가 되었으며, 교관의 수준 문제로 많은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이에 정치적 혼란 속에서 관리 진출을 기피하던 유학자들이 서원에 관심을 두게 된 것이다.

서원은 선현을 본받아 자신을 도덕적으로 완성하려는 ‘법성현(法聖賢)’에 교육의 일차 목표를 두었으며, 특히 향촌에 은거하여 성리학을 탐구하던 이황(李滉)을 비롯한 유학자들은 과거를 준비하기 위하여 공부하는 것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그러나 현실 측면에서 교육기관인 서원이 과거 준비를 외면할 수 없었으므로 관리 양성도 서원의 교육 목표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말하자면 유교 진흥과 인재 양성, 선현 제사가 서원 설립의 주된 목적이었다.

[현황]

광주광역시에 남아 있는 서원은 월봉서원, 벽진서원, 무양서원, 운암서원, 유애서원 등이며 이 중에서 월봉서원벽진서원, 무양서원 등이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문화재청이 실시하는 향교·서원 체험 사업이나 생생 문화재, 문화재 야행 사업 등에 서원이 활용되면서 제향과 교육 기능만 가진 전통시대의 서원에서 관광과 체험, 여유와 낭만을 즐기는 공간으로 변모하고 있다. 그중에서 월봉서원은 문화재청이 선정한 2020 지역문화대표브랜드 대상을 수상하는 등 서원의 가치가 재발견되고 있다.

[참고문헌]
  • 광주광역시청(https://www.gwangju.go.kr)
  • 한국사데이터베이스(http://db.history.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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