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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공예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0938
한자 裝錫工藝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광주광역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숙희

[정의]

광주광역시에서 장석을 이용하여 만드는 공예.

[개설]

장석(裝錫)은 목가구의 실용적 쓰임새에 필요한 필수적 장치물인 금속조각을 말한다. 또한 부차적으로는 목가구의 구조적 취약성을 보강할 목적으로 모서리나 부재의 접합 부분에 사용된다. 보다 넓은 의미로는 문고리, 돌쩌귀, 자물통과 자물쇠 등까지도 포함한다. 이렇게 장석의 개념이 넓은 것은 장석을 만들던 장인들이 금속과 관련된 일이라면 어느 것이든 작업했던 전통에서 비롯된 결과이다. 장석은 가구의 구조적인 보강과 함께 장식적인 기능까지 겸하기 때문이다.

장석을 만드는 장인은 두석장(豆錫匠)이라 부른다. 두석, 백동, 철, 은, 오동(烏銅) 등의 금속으로 장석을 만들지만, 『조선왕조실록』이나 『일성록』, 『승정원일기』 등 조선시대의 문헌에서 두석이라는 용어가 자주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두석을 많이 다루는 데에서 두석장이란 명칭이 왔을 것으로 추정한다. 목가구는 제 규격과 문양의 장석이 자리했을 때 비로소 완전해지기 때문에 소목장과 두석장은 실과 바늘 같은 관계라 할 수 있다. 장석은 목조 건축물을 비롯하여 목가구, 그리고 목재로 만들어진 생활용품 등에서 결합 구조를 튼튼하게 할 목적으로 고안된 것으로서, 목물의 종류나 형태에 따라서 소재나 디자인이 매우 다양하다. 옛 문헌에서는 두석장에 의하여 만들어진 장석이 목재의 가구뿐만 아니라 왕조의 옥새함이나 궤, 의궤, 칼자루, 칼집 등 금속 장식이 필요한 곳에 폭넓게 활용된 사례를 보여 주고 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그 효용성이 줄어듦으로써 수요도 많지 않고 장석을 제작하는 장인의 활동도 위축되어 있다.

[광주광역시의 장석 장인]

김정기는 광주광역시가 고향으로 1남 2녀 중 장남으로 1993년에 태어났다. 김정기는 16세 되던 해에 6.25전쟁을 겪었고 전쟁이 끝난 후 광주 학동에서 주물로 장석을 만들고 있던 친구의 권유로 장석을 시작하였다고 한다.

광주민속박물관에서 2006년에 발간한 『광주의 민속공예』에는 당시 50여 년간 장석을 만든 김정기의 작품 활동에 대해 나와 있지만 이후의 활동상이 찾아지지 않는다. 김정기는 정(釘)을 사용하여 문양을 내는 타출기법이나 문양을 새기는 조이작업 등을 수작업으로 해 왔다고 한다. 장석 제작에 가장 많은 시간이 걸리는 것이 앞바탕이다. 앞바탕 중에서도 바탕에 곡선 문양을 새기는 작업은 가장 숙련된 기술이 필요한 부분이다. 조이작업 중 특히 새의 날개처럼 정교한 문양들은 선이 끊어지지 않도록 작은 선들을 뿌려주듯이 정을 때리는 것으로 장인의 손놀림이 예사롭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여러 가지 문양의 본을 준비해 두었다가 작업 시 필요할 때 본의 도안대로 문양을 표현한다. 요즘엔 기계화된 장석들이 있어 많이 찾지 않으나 고가구 수리 등에 손으로 만든 장석을 필요로 하는 경우가 있어 아직도 수작업을 고집하였다고 한다. 김정기는 수작업으로 만든 장석은 닦으면 닦을수록 윤이 난다며 자부심이 대단하였다고 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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