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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암역 개고기 사건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0795
한자 雲巖驛-事件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광주광역시 북구 운암동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최일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생|시작 시기/일시 1926년 6월연표보기 - 운암역 개고기사건 발생
종결 시기/일시 1926년 6월연표보기 - 운암역 개고기사건 종결
발생|시작 장소 운암역 - 전라남도 광주군 극락면 운암리
성격 사건
관련 인물/단체 김기수|곤도|후지사와

[정의]

일제강점기 전라남도 광주 지역에서 일본인 학생과 조선인 학생들 간에 시비가 붙은 사건.

[개설]

1926년 6월 광주~송정리 간 통학 열차 안에서 일본인 학생 곤도[近藤]가 조선인은 개고기를 먹는 야만인이라고 비난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광주공립고등보통학교[지금의 광주제일고등학교] 학생 김기수가 이에 대해 항변하였고, 며칠 후 곤도는 사과하였다. 하지만 이 일로 인해 나주경찰서장이 통학 열차에 고등계 형사들을 동승시켜 조선인 학생의 동태를 파악하도록 지시하였다.

[역사적 배경]

일제강점기 조선인 학생과 일본인 학생 간에 있던 민족적인 감정이 원인으로 작용하였다.

[경과]

1926년 당시 전라남도 광주 지역에는 최고 교육기관으로 조선인 학생들이 다니는 광주공립고등보통학교와 일본인 학생을 위한 광주중학교가 있었다. 둘 다 5년제 인문계 학교로 두 학교 간 대립이 상당하였다. 당시 일제 당국은 광주~송정리 간 통근 열차의 객차 한 량을 일본인 중학생 전용으로 배정해 주었는데, 한국인 학생들에게는 따로 전용칸이 없었다.

1926년 6월 광주공립고등보통학교 2년생 김기수가 일본인 친구 나리타[成田]의 권유로 함께 중학생 전용열차 칸에 타게 되었다. 기차가 전라남도 광주군 극락면 운암리[지금의 광주광역시 북구 운암동] 운암역에 정차했을 때, 광주중학교 3학년생인 일본인 학생 곤도가 기차 밖의 조선인 주막집 기둥에 걸린 개고기를 보고 조선인을 야만인이라고 비웃자 격분한 김기수가 이에 대해 항변하였다.

김기수는 이후 기차 안에 있었던 일을 주변 조선인 학생들에게 말하였고, 며칠 후 이에 대해 조선인 학생들이 통학 열차 안에서 일본인 곤도에게 사과할 것을 요구하였다. 곤도는 조선인 학생들에게 개고기를 먹는 조선인을 야만인이라고 비난하였던 일을 사과하였다. 하지만 곤도는 이사건을 당시 기차 통학생 단장이었던 후지사와[藤澤]에게 말하였고, 후지사와는 다시 자신의 아버지인 나주경찰서장에게 말하였다. 당시 사건이 발생한 시간을 최영회는 6월 하순이 아니라 9월 하순에 일어난 일 같다고 하였다.

[결과]

1926년 7월 나주경찰서장은 통학 열차에 고등계 형사들을 동승시켜 조선인 학생의 동태를 파악하도록 지시하였고, 이러한 억압적인 분위기는 조선인 학생들에게 좋지 않은 감정을 갖게 하였다.

[의의와 평가]

운암역 개고기 사건은 이후 1929년 11월 3일 광주학생운동으로 이어지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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