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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군 강등 사건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0757
한자 武珍郡降等事件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광주광역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이수경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생|시작 시기/일시 1430년연표보기 - 광주목 무진군으로 강등
종결 시기/일시 1451년연표보기 - 무진군 광주목으로 복호

[정의]

1430년 광주목무진군(武珍郡)으로 강등된 사건.

[역사적 배경]

조선시대에도 고려시대처럼 읍리, 민의 수령에 대한 행패나 모반, 강상죄 등을 범하면 그 고을 자체를 폐지하거나 강등, 인근 군현에 병합시켰다. 고을의 강등은 곧 외관의 격이 강등됨을 말하며 이와 함께 읍호의 개칭도 뒤따르게 된다. 『세종실록(世宗實錄)』에는 광주목사 신보안(辛保安)과 기생 소매의 간통 사건과 살인자로 광주고을 사람 노흥준이 연루된 사건이 기록되어 있는데 이 사건 이후 광주목무진군으로 강등되었다.

[경과]

1429년 11월 13일 광주목사 신보안과 기생, 기생의 서방 노흥준이 관련된 치정 사건이 일어났다. 노홍준이 신보안을 구타하여 죽였다 하여 피의자인 노흥준을 심문하였다. 조사 결과, 병을 치료하던 의원이 광주목사 신보안은 이질에 걸려 병으로 죽었다고 밝혔지만 지역을 다스리는 수령을 욕보이고 문제를 일으켰다 하여 1430년(세종 12)에 광주목무진군으로 강등하였다. 1451년(문종 1년) 무진군으로 강등된 지 20여 년 만에 필문 이선제(李先濟)[1390~1453] 외 여러 사람이 상소를 올려 광주목의 이름을 되찾았다. 당시 광주읍성에 새로 지은 2층 누각이 완공되었는데 읍호를 되찾은 기쁨과 경축의 의미를 담아 누각의 이름을 '희경루(喜慶樓)'라 지었다.

[의의와 평가]

무진군 강등 사건을 통해 광주목무진군으로 강등되는 과정을 알 수 있고, 필문 이선제, 희경루와 연관하여 전라도 광주의 역사를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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