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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훤대
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0752
한자 甄萱臺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지명/고지명
지역 광주광역시
시대 고대/남북국 시대/후백제
집필자 노성태

[정의]

후백제를 건국한 견훤왕건의 군대와 맞서 싸웠던 광주광역시 북구의 지휘소.

[명칭 유래]

견훤대(甄萱臺)견훤왕건의 군대와 맞서 싸울 때의 지휘소였던 것에서 명칭의 유래를 찾을 수 있다. 1천여 년 전 왕건견훤영산강 유역을 둘러싸고 다툼을 벌였다. 이를 기리기라도 하듯 영산강의 중·하류 지역에는 왕건 관련 지명이 많이 남아 있다. 이에 반해 견훤 관련 기록은 상대적으로 적다. 이는 왕건견훤의 대결에서 왕건이 승자였고, 견훤이 패자였음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그럼에도 영산강 상류의 광주 지역에는 견훤대, 방목평견훤 관련 지명이 뚜렷이 남아 있다.

[위치 비정/행정 구역상의 구분]

견훤대(甄萱臺)의 위치를 정확하게 알 수는 없으나 광주광역시 북구 생용동 혹은 동림동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견훤대에 대해 『광주읍지』는 “견훤대는 주의 북쪽 15리에 있다.”라고 간략하게 서술하고 있다.

향토사학자들은 견훤대의 위치를 광주광역시 북구 생용동 대포리봉이나 북구 동림동대마산으로 추정한다. 1980년대 토성 터가 확인된 생용동 대포리봉[죽지봉]이 견훤대였다는 주장은 『삼국유사』에서 견훤이 탄생하였다는 광주 북촌 부근일 것이라는 추정에 근거한 것이다.

또 다른 견훤대의 추정지는 북구 동림동 대마산이다. 이는 19세기에 그려진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 표시된 견훤대의 위치가 읍치(邑治)[고을의 치소가 있는 곳]에서 고읍(古邑)을 지나 동창(東倉)[현 광주첨단과학국가산업단지 무양서원 자리]으로 가는 길목에 있다. 이 지도에 표시된 견훤대생용동 뒷산인 대포리봉과는 위치가 다르다. 그리고 읍치에서 10~15리 정도 떨어져 있어 『광주읍지』에 보이는 ‘북쪽 15리’에 있다는 구절과도 일치한다. 뿐만 아니라 광주광역시 서구 벽진동 사월산에 있었다고 추정되는 왕건의 지휘소인 ‘왕조대(王祖臺)’하고도 마주 보는 곳에 있다.

[관련 기록]

『광주읍지』 고적(古跡)에는 “견훤대는 주의 북쪽 15리에 있다(甄萱臺在州北十五里).”라고 기록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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