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14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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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伏龍祠遺墟碑 |
분야 | 역사/근현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비 |
지역 | 광주광역시 북구 생용동 314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희태 |
건립 시기/일시 | 1920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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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소재지 | 복룡사유허비 -
광주광역시 북구 생용동 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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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유허비 |
양식 | 석비 |
관련 인물 | 범세동 |
재질 | 석재 |
소유자 | 금성범씨 종중 |
관리자 | 금성범씨 종중 |
광주광역시 광산구 생용동 생용마을에 있는 복룡사 유허비.
복룡사(伏龍祠)는 범세동(范世東), 범가용(范可容), 범천배(范天培), 범기생(范起生), 범기봉(范起鳳)을 배향한 곳이다. 범세동의 자는 여명(汝明), 호는 복애(伏崖), 본관은 금성(錦城)이다. 1369년(고려 공민왕 18) 과거에 합격하여 간의대부(諫議大夫) 등을 지냈다. 조선이 건국되자 절의를 지키고 두문동에 은거하였다가 전라도 나주[지금의 광주광역시 광산구 덕림동]로 돌아왔다. 『화해사전(華海師全)』과 『화동인물총기(話東人物叢記)』를 저술하였다. 유허비에는 배향 인물의 행적을 기록하였다. 후손 범형식(范瀅植)과 범희덕(范熙德)이 비문을 요청하여 1912년에 신두선(申斗善)이 지었다.
1920년 3월 금성범씨(錦城范氏) 종중에서 복룡사 유허비를 세우고 비각을 건립하였다.
광주광역시 북구 생용동 생용마을 용호재(龍湖齋) 입구에 있다.
비각은 사방 1칸으로 정평주초(定平柱礎) 위에 평주를 세워 3량집으로 만들어졌다. 지방은 골기와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다.
앞면에 큰 글자로 복애범선생복룡사유허비(伏崖范先生伏龍祠遺墟碑)라 새겼다.
앞면에 비제를 새기고 다른 면에 한문체 비문을 새겼다. 비문은 1912년 초여름에 신두선이 지었다.
고려시대 인물로 『화해사전』 등 저술을 남기고 절의를 지킨 범세동을 배향하는 복룡사의 유허에 세운 비로, 역사 인물의 선양과 추숭활동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