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실
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0962
한자 齋室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광주광역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근대/근대,현대/현대
집필자 박효주

[정의]

광주광역시 관내에서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시조나 중시조, 직계 조상의 묘소 또는 사당 근처에 세운 건물.

[개설]

재실(齋室)은 제사 지내기에 앞서 목욕재계하는 집으로, 보통 묘소 아래에 지어 놓는다. 이곳에서는 제사 전에 족속이 모여 재계하면서 제사를 준비하고, 때에 따라서는 제사를 지내기도 하며 살림집을 부설하여 묘소를 수호·관리하기도 한다. 재실의 본래 기능은 묘제를 지내는 것이었는데, 조선에서는 묘제를 묘소 앞에서 지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묘제를 지낼 때 비가 오면 재실에서 지방을 써서 신위를 마련하고 제사를 행하기도 하였다. 재실은 시제(時祭)와 묘사(墓祀)를 준비하는 곳으로 사용되었다. 제사 음식을 준비할 뿐 아니라, 족속이 모여 재계를 행하는 장소였다.

문중 재실의 건립은 조선 후기, 특히 17세기 중반 이후에 일반화되는 역사적 산물로 주목되고 있다. 이는 17~18세기에 일반화된 서원과 사우의 건립을 통해 향촌 사회에서 가문의 지위를 높이고, 당쟁에서 우위를 점하여 지역의 기반을 견고히 하려는 경향과 관련이 깊다.

재실 규모는 문중의 경제력, 결집력, 제례 관습 등에 따라 차이가 있다. 재실의 기능이 제수 장만, 문중 회의, 참제인(參祭人)의 유숙, 묘역 관리 등 복합적인 만큼, 건축 공간 또한 다양성을 가진다. 즉, 머물 수 있는 방과 부엌이 있고 아울러 모임의 장소, 창고 등도 있다. 재실은 그 지역의 환경에 오래 적응해 온 다소 규모가 큰 살림집과 같은 공간 구조로 정착하였다.

[현황]

광주광역시에는 성씨의 크고 작음에 따라 문화재로 등록된 재실도 있고 현재 명단에는 남아 있으나 관리나 돌봄이 이루어지지 않는 재실도 있다. 광산구에는 규모가 있고 창건된 지 50여 년이 지난 재실이 65여 개가 있다고 파악된다. 다른 구에도 규모의 차이를 보일 뿐 관리를 필요로 하는 재실이 다수 파악된다. 현재 광주광역시에 있는 재실은 상당수가 일제강점기 때 재건된 것이다. 이는 혼란하고 나라의 정체성이 흔들렸던 시기에 조상의 혼과 숭고함을 기리기 위해 노력한 당시 선조의 안간힘이었다.

현재 남아 있는 재실의 존속 여부는 문중의 세력이 어느 정도로 강성한지에 달려 있다. 사회가 산업화되면서 문중 의식이 약화되어 감에 따라, 문화재로 등록되지 않고 문중 소유로 남아 있는 재실 중 역사적·건축학적 의미가 큰 것은 문화재로 등록하여 보존하도록 관리해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 국립민속박물관(http://www.nfm.go.kr)
  • 국사편찬위원회(http://www.history.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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