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렴정
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1665
한자 景濂亭
분야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광주광역시
시대 고려/고려 후기
집필자 강별

[정의]

고려 후기 14세기 말에 탁광무가 낙향하여 고향 광주 지역에 지은 정자.

[개설]

경렴(景謙) 탁광무(卓光茂)[1330~1410]는 고려 공민왕 때 우사의(右司儀)로서 익재(益齊) 이제현(李齊賢)[1287~1367]에게 배우고 이색, 정몽주, 문익점, 정도전, 이숭인 등과 교유하였다. 탁광무는 신돈에 아부하여 행패를 부리는 홍영통(洪永通)을 탄핵하였다가 파직되었던 강직한 인물로 신돈 일파의 전횡에 맞서다가 모함을 받아 낙향하였다. 탁광무가 지은 정자인 경렴정(景濂亭)의 이름은 ‘염계(源溪)를 경모(景慕)하라’는 뜻으로 익재 이제현이 지어 준 것이다. 또한, 조선의 설계자인 삼봉(三峰) 정도전(鄭道傳)[1342~1398]이 1392년(태조 1) 4월, 52세 때 이성계의 우익(羽翼)으로 탄핵을 받아 예천(醴泉)으로 압송되었다가 광주(光州)로 귀양 왔을 당시 경렴정에 들렀던 것으로 전해진다.

탁광무의 문집인 『경렴정집(景謙亭集)』 권1 경렴정 편액에 실린 “해동형승천호남 상유렴정하유담(海東形勝擅湖南 上有滌亭下有潭)” 이라는 시구는 13세기 초 백련사의 천태종 승려 정명국사(靜明國師) 천인(天因)의 시에 ‘호남(湖南)’이 사용된 예가 알려지기 전까지는 ‘호남’이란 단어의 최초 사용 사례로 널리 알려졌었다.

[위치]

경렴정의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다. 광주광역시 광산구 월계동 광주보훈병원 자리에 있었다는 설과 서구 쌍촌동 운천저수지 인근에 있었다는 설 등이 분분한 가운데, 탁광무의 후손인 탁인석은 경렴정운천저수지 인근에 있었다고 전한다.

[형태]

경렴정은 1370년대 초반에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탁광무가 못을 파서 연꽃을 심고 못 가운데에 작은 섬을 만들어 그 위에 정자를 짓고 생의 말년을 보냈다고 전한다.

[현황]

2018년 12월 10일 경렴정복원추진위원회가 제1회 경렴정 학술대회를 개최하였으며, 광주광역시의 예산을 지원받아 경렴정을 복원할 예정이다.

[의의와 평가]

14세기 후반에 세워진 경렴정은 문헌상 가장 이른 시기의 광주권 누정으로 평가받는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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