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작은장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1095
한자 光州-場-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유적/터
지역 광주광역시 동구 수기동|불로동
시대 근대/근대
집필자 배재훈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장시
소유자 국유
관리자 국가

[정의]

광주광역시 내를 통과하여 흐르는 국가 하천인 광주천 천변에 형성된 모래톱에서 열리던 장시.

[개설]

광주작은장은 음력 2일과 7일에 열리는 큰장에 대비되어 음력 4일과 9일의 작은 장날에 열리는 장이라는 의미에서 불려진 것이다. 광주작은장은 지금의 서석교광주교 사이 광주천에 형성된 큰 모래톱에서 열렸다. 모래톱의 모습은 1917년에 제작된 「광주군 지형도」를 보면 규모와 형태를 잘 알 수 있는데, 흐르는 물길과 모래톱을 돌아나가는 물길 사이에 반달형의 너른 공터를 이루고 있었다. 이 밖에도 1872년(고종 9)에 제작된 지방 지도 중 「광주목지도」에서도 확인되는데, 서문 인근의 부동방 지역에 초가 지붕을 가진 5개의 포[가게]가 그려진 것을 볼 수 있다. 따라서 개항기 때 이미 상설적인 건물들이 들어선 장시(場市)로 발달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당시에는 생활에 필요한 각종 비품들을 주로 장을 통해 구매하였기 때문에 광주의 큰장이나 작은장에는 인근 지역의 많은 사람들이 몰려 드는 장소였다. 이러한 점에 주목하여 1919년 전라남도 광주 지역 3.1운동을 준비하던 사람들은 큰장이 열리는 3월 8일[음력 2월 7일]을 만세운동 날짜로 잡고 거사를 준비하였다. 그러나 준비가 미진하게 되자 부득이 이를 3월 10일[음력 2월 9일]로 연기하게 되었고, 그 때문에 장소 역시 작은장이 되었다.

1919년 당일 광주작은장터에 모인 사람들은 태극기를 들고 만세를 외치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고 시위 행렬에 동참하게 되며, 이후 시가를 행진하여 광주경찰서 앞까지 가서 만세를 외쳤다. 한편 3월 13일[음력 2월 12일] 진행된 2차 만세운동은 큰장에서 전개되었다.

[변천]

1925년 일제는 광주천 직강화 공사를 시작하여 1926년 공사를 완료하였다. 공사의 결과 작은장이 열리던 모래톱의 일부는 하천 부지에 포함되었으며, 반원형으로 되어 있던 모래톱 대부분은 매립을 통해 신시가지로 조성되었다. 당시 매립된 지역 중 광주천 건너편 사동의 일부 공간에 '교사리(校社里)시장[이후 사정(社町)시장으로 개칭]'을 새롭게 만들었지만, 이마저도 곧 사라지고 주거지로 바뀌었다.

[위치]

광주광역시 남구 사동 서석교광주광역시 동구 호남동 중앙대교 사이에서 열렸다.

[현황]

서석교 입구 맞은편 보도에 광주광역시에서 세운 표석이 설치되어 1919년 3.1운동 당시 만세운동이 펼쳐진 공간임을 시민들에게 알려주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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